지주회사, 여론전, 법정투쟁, 그리고 공공 전력의 등장
전력산업이 커지자 기업의 전략도 바뀌었다. 초기 전력회사는 특정 도시나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자였다. 그러나 전기가 산업 전체의 기반이 되자, 전력회사는 단순 공급자가 아니라 금융, 정치, 기술, 지역개발을 묶는 거대 권력으로 변했다. 국가가 요금과 서비스 조건을 규제하려 하자 기업은 정면충돌만 택하지 않았다. 훨씬 정교한 수를 냈다.
첫 번째 수는 소유 구조의 복잡화였다. 전력회사는 운영회사 위에 지주회사를 세우고, 그 위에 또 다른 금융 구조를 얹었다. 이렇게 되면 실제 전기를 공급하는 지역 회사는 규제 대상이지만, 그 회사를 지배하는 상위 금융 구조는 규제 밖에서 이익을 흡수할 수 있다. 요금은 공익위원회의 감시를 받지만, 내부 거래, 경영 계약, 배당, 자본 조달 구조를 통해 수익은 다른 층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미국 전력산업에서 이 문제는 1930년대에 폭발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자료는 1932년 당시 투자자 소유 전력사업의 약 4분의 3이 8개 지주회사에 의해 통제되었고, 많은 지주회사가 주 경계를 넘어섰다고 설명한다. 이는 주 단위 규제위원회가 지역 전력회사만 통제해서는 전체 권력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시각 자료: 1932년 미국 전력 지주회사 지배 구조도]
국가는 이 구조를 뒤늦게 파악했다. 단순히 요금을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전력회사가 어디서 돈을 벌고, 어떤 계열사를 통해 비용을 부풀리고, 어느 지역의 수익을 다른 지역의 금융 구조로 이전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국가는 요금규제에서 구조규제로 이동했다.
1935년 Public Utility Holding Company Act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다. SEC 자료에 따르면 이 법의 목적은 운영 전기·가스 유틸리티를 비경제적이고 원격 지배적인 지주회사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실제 운영 지역의 주 정부가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대법원은 SEC가 지주회사에 흩어진 자회사들을 처분하고 단일 통합 공익설비 시스템으로 제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SEC])
전력회사의 두 번째 수는 여론전이었다. 전력회사는 공공소유를 비효율, 사회주의, 관료주의로 묘사했다. “민간기업이 해야 혁신이 가능하다”, “정부가 전기를 운영하면 낭비가 심해진다”, “공공 전력은 납세자의 부담이 된다”는 논리가 동원되었다. 국가는 이에 맞서 청문회와 조사보고서, 농촌 전기 접근성 문제를 통해 반격했다. 전기 논쟁은 기술 논쟁이 아니라 정치 논쟁이 되었다.
[시각 자료: 1930년대 테네시강 유역 전력 접근성 지도]
이 구도는 TVA에서 절정에 달했다. 1933년 설립된 Tennessee Valley Authority는 홍수 통제, 항행 개선, 댐 건설, 지역 개발, 저렴한 전력 공급을 목표로 한 뉴딜 공공기관이었다. TVA Act는 테네시강 유역의 댐 건설과 홍수 조절, 항행 개선, 값싼 전력 생산을 위한 기관을 만들었다.
[시각 자료: TVA 설립 전후 지역 전기요금 비교표]
민간 전력회사는 TVA를 단순 공공사업이 아니라 정부의 시장 침입으로 보았다. 이들은 법정투쟁을 벌였다. 핵심 논리는 재산권과 권한 초과였다. 국가는 전기를 팔 권한이 있는가, 연방정부가 지역 전력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가, 공공기관이 민간 전력회사와 경쟁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1936년 Ashwander v. TVA에서 미국 대법원은 TVA가 Wilson Dam에서 생산된 전기를 판매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공공 전력이 민간 전력회사와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전력회사의 세 번째 수는 민간 공급의 선택성이었다. 수익성이 높은 도시와 산업 지역에는 전기를 공급하지만, 농촌과 저소득 지역은 외면했다. 전선 설치비가 크고, 고객 밀도가 낮고, 회수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반격을 했다. 바로 농촌전력화였다.
1936년 Rural Electrification Act는 고립된 농촌 지역에 전기 배전망을 설치하기 위한 연방 대출을 제공했다. 이 자금은 주로 지역 전기 협동조합으로 흘러갔고,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이 외면한 지역에 전력망을 깔게 했다. 미국 농무부 자료도 이 법이 농촌 지역의 전기·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선하기 위한 대출 권한을 부여했다고 설명한다.
[시각 자료: 농촌전력화 이전과 이후 미국 농가 전기 보급률 그래프]
이 대목이 중요하다. 국가는 반드시 모든 전력회사를 국유화해야만 기업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공공 대체재, 정책금융, 협동조합, 요금규제, 구조규제를 조합했다. 민간기업이 “우리가 아니면 전기를 공급할 수 없다”고 말하면, 국가는 “그렇다면 공공기관이나 협동조합을 통해 공급하겠다”고 답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더 직접적인 길을 택했다. 영국은 1947년 Electricity Act를 통해 505개 지방정부·기업 소유 전력사업을 British Electricity Authority 체계로 귀속시켰다. 프랑스는 1946년 전후 복구 과정에서 발전·송전·배전을 국유화하고, 1,650개가 넘는 회사를 통합해 EDF와 Gaz de France를 만들었다.
여기서 전기의 수싸움은 완성된다. 기업은 효율성, 투자, 혁신, 자연독점, 사유재산을 말하며 주도권을 지키려 했다. 국가는 보편접근, 요금 안정성, 지역균형, 전력망 통합, 사회재건을 말하며 개입했다. 기업은 소유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국가는 구조를 단순화했다. 기업은 공공소유를 공격했고, 국가는 공공 대체재를 세웠다. 기업은 법정으로 갔고, 국가는 입법과 판례로 응수했다.
이 싸움에서 결정적인 것은 “국가가 이겼는가, 기업이 이겼는가”가 아니다. 더 정확한 결론은 이것이다. 필수 인프라가 된 자원은 결국 순수 사유재산의 언어만으로는 유지되지 못한다. 어떤 나라는 국유화했고, 어떤 나라는 공익규제에 머물렀고, 어떤 나라는 공공 대체재를 만들었다.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국가는 계량기, 요금표, 접속권, 공급 의무를 기업의 전략만으로 방치하지 않았다.
이 구조가 AI 시대의 예고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