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올 여름, 어디로 떠날 계획이신가요? 시민 만 명에게 물어봤습니다!" 라디오를 켜자 매번 들리던 내용이 또 나왔다. 답은 뻔하다. 바다가 1위일 테고 산과 계곡, 호텔이 뒤를 잇겠지. 그러나 예상 밖의 답이 나왔다. "응답자 대부분이 '절'로 가겠다고 답했습니다!"
연일 뉴스에서 이 내용을 다뤘다. 최근, 사람들 대부분이 산 속 절로 가고 있다고 한다. 여름 휴가 한 철이 아니었다. 직장, 학교를 관두고 '속세를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아직 도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머리만이라도 밀어두고 있었다. '바리깡'이라 불리는 이발기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게 증거였다. 거리에는 민머리인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세상에 '눈부신' 변화가 일어났다.
특별한 현상은 또 있었다. 전국 사찰들이 포화 상태가 됐다. 유행을 감당하지 못한 불교계는 사람들을 마냥 환영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했다. 직장도 사업도 관둔 사람이 늘었다. 그러자 차츰 자업자득하는 생존 방법이 번져나갔다. 수렵과 채집 활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전보다 많이 움직여야 했고 식사량은 줄었기에 다들 조금씩 말라갔지만 그들의 표정은 야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지쳤어요." 도시를 떠나 절로 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었다. 끊임없이 자기 PR을 하는 것에도, SNS에 나를 뽐내는 것에도, 신상템이 나왔다 하면 덩달아 구매하는 것에도 지쳤다고들 한다. 유행을 좇고좇아 숨이 차서 하나둘 산으로 이주했다. 더 이상 주식창을 들여다 본다거나 나만 뒤쳐질까 애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안하다고들 했다. 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쉼을 주는 것이 새로운 유행인 것이다.
다른 유행과 마찬가지로 이 현상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한두 해가 지나자 절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시 일터로,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이전과는 다른 여유가 생겼다. 지친다 싶으면 과감히 쉬어주는 용기가, 남들의 취향을 무분별하게 좇지 않는 자기 중심이 생겼다. 언제든 머리에 열 뻗히는 일이 생기면 시원하게 머리털을 밀어버릴 수 있게 저마다 가방 깊숙이 바리깡을 넣어두고 살았다. 더이상 남들의 방식대로 살지 않았다. 또다른 유행이 생겼다면 그 바리깡을 장식하는 이른바 '바꾸' 정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