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서른
한 때 유행했던, 그리고 제목 그 자체로 널리 쓰인 책이 있다.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이다.
'90년생'으로 지칭되는 2030 세대에 대한 분석과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들이 적힌 책이다.
사실 나는 90년생보다는 5살 어린 95년생이지만
그 범주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90년대생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조금 '아픈' 얘기들이 되겠다.
본글에 앞서, 나보다 연장자인 분들께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더 아프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겠지만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 마음 이해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1. 만 30세가 되었다.
만 나이가 아니라면 서른 하나,
생일이 늦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이제 만 나이를 들이대도 어엿한 30대에 속한다.
몇 년 전부터 '남자 나이 서른의 비애'를 형님들께 듣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얘기를 동생들에게 하는 나를 발견한다.
어린 시절 즐겁게 불렀던 동요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이제는
내 아픈 부위를 읊조리는 웃픈 노래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구장에서 중고등학생들과 겨루던 나였는데
이제는 출근 버스를 잡으러 뛰는 것도 부담된다.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는 왜이리 짧은지...
2. 노후한 시설과 장비, 남 얘기같지가 않다.
작년부터 부쩍 노후화한 장비와 시설 얘기를 자주 접한다.
실은, 아나운서로서 그런 소식을 내 말로 직접 전하기 때문에
더 깊숙이 와닿는 느낌도 없지 않다.
고장으로 멈추어버린 에스컬레이터,
이륙에 실패해 점검에 들어간 헬기,
벽면에서 균열이 발생한 고층 건물...
내용을 보다보면, 이것들도 모두 '90년대생'이다.
심지어는 나와 동갑인 95년생 돼지띠들도 있다.
만들어진 지 30여 년, 눈에 띌 만한 손상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째, 나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차갑고 딱딱한 철골과 석재 구조물들에게 공감하는 날이 늘고 있다.
'강하게 만들어진 저것들조차 부서지고 있는데
연약한 내 몸은 얼마나 버티려나?'
3. 내 몸은 무거워져가는데 짊어져야 할 것들은 늘어만 간다.
'20대 남자'와 '30대 남자', 그 말에서부터 무게가 다르다.
불과 한두 살 차이었을 뿐인데, 부쩍 어른이 된 느낌이다.
20대 때는 이런 말들이 따라왔다.
'너 나이에는 되게 대단한 거야', '난 그때 그렇게 못했어', '너 잘 한다며?'
30대에는 이런 말들이 들린다.
'이제 미래 생각해야지', '계속 할 거야?',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언뜻 비슷한 말들도 한두 해 만에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전에는 가능성만 보여줘도 됐는데 이제는 증명을 해야하는 시기가 됐다.
4. 그럼에도, 즐겁다.
돌이켜보면 30대가 되고 싶었다.
남자로서 20대는 어린 느낌, 부족하고, 강인하지 못한 느낌이었고
외적으로도 많이 부실해보였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 되고 나니 서른 하나, 둘, ... , 일고여덟이 되는 건 두렵지만,
마흔으로 가는 길은 좀 느리면 좋겠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어리숙한 느낌이 조금은 줄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내 안에 줄기가 어느 정도 단단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하고 싶은 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무엇이 좋고 나쁜지 예전보다는 쉽게 분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착각할지도, 그 생각이 틀려쓸 수도 있지만
마냥 혼란스럽고 방황하기만 하던 시기는 지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30대가 만족스러운 건 20대를 치열하게 산 덕이다.
얼마전 내 전 직장인 KNN 방송국이 30주년을 맞았다.
95년생 동갑내기다.
30주년을 기념하고 알릴 수 있는 건
치열하게 쇄신하고 발전하고 노력하며 보낸 30년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는 않게
그렇게 나도 지난 30년을 축하하며 앞으로 30대로서의 인생도 탄탄히 다져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