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언장

새로운 삶을 앞두며

by 나를찾는글

농구공을 처음 잡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때였다. 농구가 취미인 친구를 따라 시작했다. 통통 튀는 느낌도 좋았고 골이 들어가는 기분도 좋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리바운드였다. 팀이 쏜 슛이 들어가지 않고 골대에 맞아 튕겨나갈 때, 힘껏 뛰어올라 잡은 공을 다시 돌려주는 게 좋았다. 슛을 원체 못쏴서 그랬던 것도 같지만 '한번 더' 할 기회를 만들어내는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농구는 내 인생 많은 부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농구 실력이 좋아질 수록 생활 전반에서 자신감도 높아졌고 덩달아 자존감도 커갔다. 단체 운동인 만큼 인간관계도 넓어졌고 혈기왕성한 남자들끼리 부딪히며,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도 배웠다. 큰 목소리로 서로를 칭찬하고 점수를 세면서 목청도 커졌는데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걸맞은 발성의 기초도 농구를 하며 다진 셈이었다. 그렇게 13살부터 십수 년을 매주 쉬지 않고 농구를 하며, 농구는 내 인생의 절반이 돼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인 날에도 농구를 하면 기분이 좋아졌고, 한바탕 숨을 헐떡이고 나면 '나는 살아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요동치던 내 인생의 반절에, 몇 년 전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단 1초 만에 발생한 사고였다. 한쪽 발목이 양방향으로 순식간에 세 번 꺾이며 모든 인대가 다쳤다. 인대 두 개는 찢어지는 데에 그쳐 회복이 되었지만 가장 긴 인대는 아예 절단이 나버렸다. 몇 주간 방송이 힘들었던 것, 목발 짚고 다니며 받는 주변의 시선같은 것들은 버틸 수 있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앞으로 농구를 다시 하기 어렵다는 진단이었다. 수술이나 재활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하긴 했지만, 방송인이라는 직업이 걸렸다. 다시 농구를 하다 또 다치게 된다면 타격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인생 절반을 함께했고, 내 생활의 반을 차지한 농구를 보내주기로 했다. '농구하는 나'를 보내주기로, 마음 속 미련을 묻어주려 한다. 앞으로를 살아갈 또다른 나를 위해 유언을 읊는다면 특별한 장소에서 하고 싶다. 지난 세월 나를 누구보다 뜨겁게 뛰게 했던, 희노애락과 추억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농구장을 나의 유언장(場)으로 삼고 싶다. 그곳에서 함께 농구했던 친구들을 불러모아 말을 남기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담길 것이다.

1. 유언자는 이상철, 1995년 6월 4일생으로 농구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나. 상속자 역시 이상철로 농구를 못하게 된 나.

2. 재산 목록과 상속 계획 : 다음 유산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나에게 상속한다.

1)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농구하던 열정과 에너지 : 새로운 목표에 아낌없이 쓰도록 상속한다.

2) 한 경기라도 더 뛰던 체력과 정신력 :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에 쓰도록 상속한다.

3) 값비싼 농구화를 합리적은 값에 사던 경제관념 : 나를 위해 쓰던 돈을 가족을 위해 쓰도록 상속한다.

3. 날인은 가슴 속에 깊이 새기도록 한다. 2025년 5월 13일


흔히 삶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나 역시 40대까지 농구하며 지낼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크게 다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인생이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삶이 팍팍해지면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가고 있다. 그러면서 유언장을 미리 남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유언장을 작성함으로써 오히려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더 계획적으로 뚜렷하게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삶을 끝내는 순간 남기는 줄로만 알았던 유언이 앞으로 살아갈 삶의 길잡이가 돼주는 것이다. 내가 남기는 유언 역시 나에게 새 삶을 일깨워주게 될 것이다. 젊은 날의 패기와 열정을 이제 인생 중반부로 옮겨가려 한다. 농구에 미쳐 지내던 나는 오늘로써 마음 속에 묻어두지만 그때의 열정과 정신력은 또다른 나에게 계승될 것이다. 발목은 지금도 아프지만, 그날의 발목 부상이 오히려 내 인생에 추진력을 심어줄 것이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강의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