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바람 May 13. 2022

이건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매번 내가 고르는 카트는 이 모양일까.

카트를 끌 때마다 드르륵 소리가 난다던가, 핸들링이 전혀 되지 않아 애를 먹던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늘 이상한 카트를 골라온다는 생각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카트 대열에서 카트를 꺼낼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오늘도 역시 예외는 없었다.

하아... 도무지 핸들링이 되지 않는 노후된 카트. 아니 어디가 고장 난 걸까. 그러기엔 카트의 구조가 너무 단순해 보여 딱히 고장이 날 곳은 보이지가 않는데 말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삼십 분간 녀석과 실랑이를 벌이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도 또 마음대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카트를 보다 나도 모르게 바퀴를 뻥뻥 차버렸다. 원인은 모르지만 그냥 한대 쥐어패고 싶었다. 성질을 부리고 싶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장 보기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일 오늘 아들과 같이 왔었더라면 카트는 중학생 아들이 끌었을 테고, 그러면 핸들링이 안 된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괜찮아, 장 금방 봐. 매번 좋은 카트만 골라올 수 없잖아. 잠시만 참아."

라고 말했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난 참 가식적인 엄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문제나 돌발 상황이 생기면 최대한 침착하고 차분하게 먼저 아이를 달래고 이 상황도 곧 지나갈 테니 최대한 버텨보자고 독려한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고 오늘은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고작 이까짓 일 때문에 우리가 해 왔던 일을 포기하거나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고. 그냥 버텨보자고. 세상 통달한 사람처럼 아이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얘기한다.

물론 내 속은 타들어 가고 깊은 짜증이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지만 오히려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무조건 괜찮다고 얘기한다. 평소 긴장도가 높은 아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처럼 예민한 성격으로 자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운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있으면 끼어들기 하는 차를 보며,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불법 주정차들을 보며 수위가 낮은 불만을 쏟아내지만 혼자 운전할 때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마치 인간 본성의 바닥을 드러내듯 험한 말들을 맹렬히 퍼붓는다.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가식적일까.

아이는 나와 같이 욱하는 성격으로 자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나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괜찮다'라고 계속 말하다 보면 내 성격도 조금은 유해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요즘 내 행태를 보면 사람, 참 쉽게 바뀌는 거 아니더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아이는 바르게 키우고 싶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만 결국 혼자 있을 때면 제 성질을 마구 드러낸다. 왜 그럴까.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입으로는 자식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본인은 옆으로 걸어갔다는 꽃게 아줌마의 얘기처럼 나는 왜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교육을 하고 있는 걸까.

난 언제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난제다. 난제가 아닐 수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杞憂 - 杞人忧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