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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ul 06. 2022

꿈이란...

아들의 진로 희망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理想如晨星,我们永不能触到,但我们可像航海者一样,借星光的位置而航行。

꿈은 손에 닿을 수는 없는 별과 같지만, 항해사가 별빛을 따라 항해하듯 우리도 꿈을 보며 나아간다. 


꿈 많은 소녀가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그러니까 '직업'이라는 개념이 탑재된 순간부터 한시도 장래 희망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외교관, 패션 디자이너, CEO, 그리고 동시통역사까지.


그 누구도 꿈을 가지라고 독려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소녀는 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싶은 게 많고, 이루고 싶은 게 많은 소녀라니.


소녀는 열심히 노력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볼록한 이마가 가져다주는 관운(官運) 덕분인지 시험만 보면 철썩 잘도 붙었다. 소녀의 부모는 다른 길을 권유했지만, 소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 있었다. 꿈을 이루고 멋지게 살 거라는.


하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길,

최종적으로 소녀는 꿈의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소녀의 언니가 있다. 소녀의 언니는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었다. 그저 부모가 공부하라니 할 뿐, 미래에 대한 계획도, 포부도 없었다. 그런데 부모의 뜻에 따라가다 보니 죽을 때까지 영위할 수 있는 소위 '전문직' 여성이 되었다.


나와 언니의 얘기다.

나보다 열 살 많은 언니의 재수 시절을 반추하자면 핏기 없는 얼굴로 문을 나서고 들어오는 모습밖에 없다. 집과 독서실이 언니의 동선을 연결하는 유일한 포인트였다.

전기 대학 모집 시즌, 엄마의 손을 잡고 언니가 시험을 보러 간 대학교에 갔다. 아직도 기억난다. 시험이 끝나고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수험생들 사이로 곤죽이 된 언니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애석하게도 언니는 낙방했고 후기 대학에 응시해야 했다. 그날도 나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원서 마감 시간까지 채 오분 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참을 분주하게 다니던 엄마의 얼굴에 예리한 비장함이 스치더니 언니와 합의했던 '전산학과'가 아닌 '약학과'에 원서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언니는 합격했다. 막판 치열한 눈치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엄마의 현명하고 탁월한 선택 덕분이었다. 언니는 엄마의 가장 큰 성과이자 자랑이다.


언니에게는 꼭 이루고 싶다는 꿈이나 장래 희망이 없었다. 그저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을 뿐인데 지금 누구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고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그에 반해 나는 '자기 주도 학습'이 너무나도 잘 되는 아이였다. 한마디로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당돌한 아이였다. 언니를 본보기 삼고 오빠를 반면교사 삼아 알아서 공부했으며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갔다.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척척 해내는 나는 참 기특한 딸이었지만 어른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 고집불통이기도 했다. 생전 학교를 찾아온 적 없던 엄마가 나를 문과가 아닌 이과를 보내겠다고 담임선생님을 직접 찾아뵙지만 결국 나의 단호함에 한발 물러설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냥 지켜보셨던 것 같다. 알아서 하는 아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나는 지금...


물론 나 역시 엄마의 자랑이다. 우선순위는 언니에게 좀 밀리지만.


내가 소망하 장래 희망을 직업으로 가진 게 꿈을 이루는 척도라면, 나는 꿈의 문턱까지 밖에 가보지 못 한 사람이 된다. 정확하게 말해, 난 장래 희망으로 밥벌이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니까.


아들이 학교에서 진로 희망서를 받아왔다. 아들은 아직 꿈이 없다. 나는 이런 아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 늘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는데... 어째서 꿈이 없을 수 있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니가 떠오른다.


그래 꿈이 없었어도, 엄마 말을 잘 들었던 언니가 나보다 더 잘 살잖아. 어쩌면 삶의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어. 하고 싶은 게 없다면 내가  좋은 길로 인도하면 되지 않을까?


不听老人言,吃亏在眼前。

어른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니까.


이런 생각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난 어느새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있다. 근데 그건 또 싫다. 엄마가 그랬다. 인생, 관 뚜껑 닫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라고.


不到最后一刻,就分不出输赢。

마지막 순간이 오기까지 승패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대입에서는 뚜렷한 인생의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단다. 그래야 탐구 과목을 할지, 어떤 동아리에 가입해야 하는지 로드맵을 세울 수가 있단다. 그래서 중3이 끝나기 전에 무조건 꿈을 만들어 오란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아직' 꿈이 없다.

나는 꿈 많은 소녀였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꿈을 가지라 강요하고 싶지 않다.

언니와 나의 예화 때문만은 아니다. 학년을 거듭할 수록 아이에게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길거라 믿는다. 자신의 성향에도 맞고 즐길 수 있는 일 말이다. 우리시절보다 더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대이니 충분이 제 꿈을 찾아낼 거다. 난 기다릴 수 있다. 아이가 몸을 배배 꼬며 제 입으로 하고 싶어 죽겠다고 말하는 꿈이 생기는 날을. 설령 없어도 상관없다. 그 자체가 아이 인생의 궤적이 될 테니 내가 인위적으로 개입하고 싶지 않다.


꿈을 이루지 못한 나 역시 괜찮다. 안타까운 마음에 터져 나오는 주변의 탄식이 명치에 걸린 오백원 크기 만한 비타민 알약 같지만, 뭐 상관없다.

중국어로 밥벌이는 못 한다 해도 중국어 잘하는 할머니 될 자신은 있으니까.


근데 웃긴 건,

결국 아이의 진로 희망서에


'약사'


라고 써냈다는 사실이다.


어머,

나 안 괜찮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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