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왈가닥이다.
가을날의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고,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여성스러운 모습은 내 인생 어느 구간에도 없었다. 겉모습은 얼추 그렇게 꾸며 놓아도 주변 사람들에게 늘 지적받는 걸음걸이부터 말투, 하는 짓까지 선머슴에 가까웠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난 명랑 발랄 주책바가지 아줌마다.
얼마 전 생일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Y를 만난 날, 우리는 장고 끝에 퓨전 중식당을 골랐다. 식당에 들어서자 의외로 테이블이 많이 비어있어 아무 데나 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오세요'라는 사장님의 인사와 함께, '예약하셨나요?'라는 질문이 날아왔다.
- 어, 아니요. 예약해야 해요? 예약 안 하면 못 먹어요? 어머~ 어쩌나?
- 어휴, 아니죠, 당연히 식사 가능하죠.
- 아하하하, 놀랬잖아요.
나와 사장님의 대화를 듣던 Y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혀를 내둘렀다.
-아니, 너는 어떻게 그렇게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를 해? 어?
내가 이렇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꼬마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말을 걸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어머, 그거 뭐야? 포켓몬 빵이야? 와, 이게 요즘 그렇게 인기라더니. 어디서 산 거야?
'친구는 몇 학년이야? 그 가방 참 예쁘다.'
그럴 때마다 내 정신 줄을 부여잡는다. 말 시키지 말자, 주책 떨지 말자.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해가 갈수록 주책이 는다.
내 주책은 아들의 친구들을 차에 태울 때도 발동한다.
아들 친구 중에 내 말을 잘 받아주는 아이가 타면 자꾸만 말을 건다. 그런데 그때마다 아들의 눈치가 보인다. 엄마가 대화에 끼어드는 걸 못마땅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픽업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속으로 계속 되뇐다.
'나는 택시 기사고 쟤네는 손님이다. 말 걸지 말고 운전이나 하자.'
이런 나에게 요즘 고민이 생겼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6년간 아침 출강을 했던 회사의 어느 대리님 카톡 프로필에 아기 사진이 떡 하니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대리님은 출강 시작부터 끝까지 6년간을 함께 했던 원년 멤버였다. 6년 동안 한 회사에서 아침 출강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 수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자주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대리님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다. 게다가 반장을 역임했을 때는 명절마다 사비로 선물과 감사 카드를 준비해주는 고마운 분이었다. 나와 수업하는 6년 동안 평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했고,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 결혼식엔 직접 가지 않았지만 축의금을 건넬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은 대리님에게, '아기 낳으면 제가 진짜 멋진 출산 선물해드릴게요'라는 말도 했었는데, 그런 대리님에게 예쁜 천사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2020년 2월 코로나가 터졌고, 3월 중순 수업은 급하게 마무리됐다. 사태가 좀 진정되면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눴는데 이렇게 2년 넘게 코로나에 발이 묶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대리님의 카톡 프로필에 올라온 아기 사진을 보며 계속 고민 중이다.
선물을 보내고 싶은데, 보내도 되나? 2년이나 지났는데, 그래도 되나?
주변에 물어보면 하지 말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오지랖이라고. 넌 이미 잊힌 사람일 거라고. 선물 보내면 널 스토커로 오해할지도 모른다고.
그래, 하지 말자. 이미 지나간 사람들인 거다. 다시 출강한다는 기약도 없고, 그 회사에서 날 부른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니 만날 일은 더더욱 없는 거고.
그런데 그렇게 지나간 인연들이 아쉽다. 좋았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기 아쉬워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 인연이 다 한 거다.
缘分已尽!
yuán fèn yǐ jìn !
여기서 더 나가면 진짜 주책맞은 거다.
不要失去分寸! 要适可而止!
bù yào shī qù fēn cùn ! yào shì kě ér zhǐ !
나는 아주 조금만 주책맞은 아줌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