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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Kim Dec 15. 2015

성탄절

어린 시절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성탄절 아침이 되면 어김 없이 머릿맡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놓여져 있었다. 그래서 성탄시즌이 되면 나이가 들어도 기대가 되고 흥분되는 즐거움이 있다.


이제 시대가 많이 변해서 성탄절날 산타가 굴뚝을 타고 들어와서 선물을 준다는 사실을 믿는 어린이들은 거의 없다. 연령대가 많이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선물들을 기다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사야서 9장 1절에6절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의 탄생 700년 전의 스토리다,


유대왕 히스기아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메시지다.


그의 전한 첫 메시지는 매우 어둡고 절망적인 지역에 희망적인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사야 9장 1절)


스불론과 납달리는 갈릴리 호수 서북쪽 나사렛 지역인데 같은 유대땅이면서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을 때 나다나엘의 반응이 대단히 냉소적이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탄생 700년 전에 바로 그 나사렛 동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이사야 9장 2절에서 4절)


스불론과 납달리 사람들이 큰 빛을 보았고 그로 인해 그들은 크게 기뻐했고 즐거워 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노예로, 박대 천대 속에 거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사야 9장 5절)


더 이상 무기와 군복이 필요 없는 세상, 군인들의 군화와 피 묻은 갑옷들을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이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평화의 세상이 전개될 수 있는가? 그 이유가 이사야 9장 6절 상반절의 말씀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이사야 9장 6절 상반)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은 바로 “한 아기”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한 아기의 탄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아기로 오신 예수를 “기묘자”, “모사”로 소개하고 있다.


다른 번역본, 특히 영문 번역본에서는 이 두 단어를 묶어서 “놀라우신 조언자”라고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하여 왜 기묘자요 모사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분의 출생부터가 신비롭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아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동정녀 탄생에 대한 사실을 말해 준다. 6절 상반절에 “우리에게 났고..”라는 표현은 세상에서 출생했음을 가리킨다. 이 사실에 대하여 이사야가 먼저 언급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장 14절)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 곧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다는 뜻이다.


그 아들의 출처가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그 아기의 신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종합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선물은 참 사람이시면서 또한 참 하나님되심을 알 수가 있다.


이뿐 아니라 그분의 성장과 사역 자체가 신비롭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하여는 예수님의 생애 내내 궁금증과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실 때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나타내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7장 28절에서 29절)


예수님의 기묘하심은 탄생, 그리고 성장 과정, 공생애와 죽으심과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기묘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이와 같이 기묘막측하신 분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알게 되고 그 분을 믿게 되면 우리도 그 신비롭고도 놀라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예수님은 기묘하신 분이시면서 또한 모사이시다.

“모사”란 말의 의미는, 카운슬러, 조언자란 뜻이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기묘자”와 “모사”를 한데 묶어서 “놀라우신 조언자”(wonderful counsellor)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때때로 상담자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상담의 원칙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지시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보조적이다. 그래서 상담을 받고도 찜찜해서 다른 탁월한 상담가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더풀 카운슬러이시다. 왜냐하면 전지하신 하나님의 계시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에서 30절)

때때로 답답할 때가 많다. 부부 문제, 진로 문제, 자녀 문제 등등. 문제가 생기면 주님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 도리어 정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장 30절)

예수님은 우리의 탁월한 카운슬러이시다.

이렇게 참 좋은 예수님께서 2015년 성탄에 오신다. 메마르고 강퍅한 우리의 가슴에 오시길 간절히 원한다. 그래서 세상이 어제보다 나은 행복이 가득한 세상, 격려하고 위로가 넘쳐 흐르는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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