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우리에게 줄곧 속삭여왔다.
수능의 시간이 끝나면 순응의 시간도 곧 끝난다고
하지만 사회에 나온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의 노력은 보답받았는가?
설령 그 길 끝에 여러분을 위한 낙원이 있더라도
이미 상처받고 비틀린 그대들의 마음은 어찌한단 말이냐?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나는 한동안 삶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현대인에게 너무나 친숙한 악우인 경미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던가, 단순히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에 염증을 느낀 것은 분명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진작에 내 삶의 순간들에서 수없이 많은 위기가 있었을 테지만, 이번처럼 삶의 존속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시도한 적은 없었을 테니깐.
나는 오늘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퍼져있는 정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울과 불안, 좌절과 절망의 정서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지난 9개월간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덮어두었던 스스로의 상처를 들춰보게 되었고, 스스로의 문제를 직시하는 과정에서 삶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심한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이는 예상치 못한 반동이었으며,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열이자,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기에 이 글은 본질적으로 투병일기이며, 사(死)가 아닌 생(生)을 위한 자기 고백이다. 나는 주변의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해결되지 못한 슬픔과 상처로 신음 지르며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삶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끝마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이 글을 선천적인 정신의 남다름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속에 남들보다 커다란 슬픔과 분노를 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순수한 마음을 지녔지만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대학생활을 나와 함께한 사람이라면, 나라는 인간이 썩 정신적으로 영근 사람이 아닌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기 확신과 당당함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기보다는 항상 불안하고 요동치는 모습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으니깐 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과 행동, 기분마저도 달라지는 사람이 나였고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결박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중학교 무렵부터 줄곧 인지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 정도의 불안은 누구나 겪는 것이라면서. 굳이 나를 이야기 속 유별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스스로를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보잘것없었고, 내 주변에는 나보다 특출 나고 월등한 애들이 너무 많았으니깐.
문제가 심각해진 건 나 홀로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였다.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가정에서 벗어나서였을까 아니면 비로소 때늦은 사춘기가 터져 나왔던 것일까,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환경에 놓인 어린 시절의 나는 넘쳐흐르는 감정을 주체할 줄 몰랐다. 당황스럽고도 연속적인 감정의 분출과 변동 사이에서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에게 친절하고 인내할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공격성이 높았던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싸움이 일어났고, 수업시간에 틀어주는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불의 앞에 분노를 감출 줄 몰랐다. 이런 나의 극단적인 성격은 일찌감치 이를 인지한 가정에서의 주의와 사회에서의 교육을 통해 조절되었지만 극단성과 양면성이라는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정에서는 그저 남들에게 친절하고 선할 것만을 배웠기에 나는 내가 남들에게 친절한 만큼, 타인도 나에게 친절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며 내 안의 감사와 친절을 나누어주기에 급급하였다. 스스로를 위한 작은 친절의 몫마저 남겨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적절한 적을 설정하지 못한 것 또한 나의 큰 실수였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경쟁사회에서 적과의 대결을 통해 성장한다. 그것이 선의의 경쟁자일수도, 내가 극복해야 할 내면의 벽일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적을 설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성장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적과의 이상적인 대결은 가족과 친구, 좋은 멘토만큼이나 우리를 성장시킨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통제된 공격성과 모나지 못한 순진함은 타인에게 날을 세우기를 주저하였고 결국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못나서 그래'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고3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나의 불행이 의도된 몇몇의 교묘한 따돌림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지만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자기 채찍질은 자기혐오와 자기 비난으로 변질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내 인생은 지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Full Metal Jacket (1987)
남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공부에 열중할 고등학교 3학년, 나는 마지막 결승전을 달리기도 전에 이미 탈락해 있었다. 남들이 공부와 학업에 대한 열정에 미쳐 있을 때, 나는 혐오스러운 자신을 있는 힘껏 칼로 쑤시는 상상을 나의 적들의 교실에 찾아가 그들을 칼로 찢는 상상을 무한히 오가며 반복되는 죽음의 상에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피해망상은 더욱 심해져 항상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험담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맨 뒷자리에 앉았고, 매일 밤 난간에 기대 밤새 부모와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그저 죽음을 유예하고 있었다. 한번은 사소한 일로 급식실에서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는데 이때의 나는 교실로 돌아간 후에도 비이성적인 흥분에 휩싸여 '언제 나를 해치러 올지 몰라', '지금이라도 걔 반에 찾아가서 먼저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망상과 극단적인 계획들의 실행을 꿈꾸었다.
항상 마음속의 분노가 몸을 휘감을 때면 '나는 더 이상 나약하게만 있지 않겠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상처받으리라'라는 생각과 함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전능감과 고취감이 휩싸였던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결단'을 내릴 수 있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어느 날 룸메이트와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을 때, 나는 나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호흡은 가빠졌고,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으며, 근육은 다가올 싸움을 대비하여 팽배히 수축하였다. 오직 나의 적만이 눈에 들어왔으며 모든 것이 분명하고 또렷해 보였다. 미칠 듯한 호르몬의 작용이 끝나자 시퍼렇게 물들어버린 주먹에는 고통이 몰려들어왔고, 나의 피부는 핏기가 돌지 않을 만큼 창백해졌으며, 힘이 풀려 주저앉음과 동시에 헛구역질이, 그다음에 극심한 공포와 슬픔이 찾아왔다. 그 어디에도 내 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미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주말이 되지 않았음에도 학교를 뛰쳐나왔다. 나의 집, 나의 고향을 향해서.
본가에 도착했지만 나는 '내가 정신병에 걸렸구나'라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니 돌려보내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학교생활을 완주하기를 원하는 타인의 마음에 의해 말이다. 다행히 이전처럼 내 머릿속은 망상으로 가득 차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두 알, 점심에 한 알, 자기 전에 한 알. 뇌가 기능할 틈을 주지 않고 수시로 고용량의 약물을 먹으니 누군가 내 머릿속에 이클립스를 넣어놓은 기분이었다. 머리 한켠 화한 민티함과 함께 그저 졸린 기분만이 계속 들었다. 나는 자고 또 잤다. 수업시간에 자고, 식사시간에도 자고, 자습시간에도 잤다. 눈을 감으면 이 모든 것이 지나기를 바라면서, 다시 눈을 뜨지 못하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그저 암전의 세상으로 빠져드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내가 이 학교에 남아있는 이유, 그 온갖 더러운 꼴들과 비참한 일들을 겪어왔음에도 전학가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몇 장짜리 자소서였고, 나는 눈을 뜨면 그저 자소서를 작성하며 나의 터무니없는 망상과 염원을 적어 넣을 뿐이었다. 단언컨대 그 학교에 나보다 간절하게 자소서를 쓴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 가면 자고, 기숙사에 와서 밤새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는 나날이 반복되다가, 결국 수능날이 찾아왔다. 아직도 수능날이 기억난다. 버스에 타면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노래, 내가 입었던 옷, 그 차가운 공기마저도. 그 어떠한 간절함도 없이 수능을 치르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끔찍한 공간도 떠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데리러 온 부모님의 차를 타고 떠나며 누구보다 크게 외쳤다. '좆같은 학교 망해라!'
그렇게 나는 3년 만에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3년 전, 이 방을 떠나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처량함과 비참함의 감정만이 몰려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내 일상이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낮에 자고 밤에 활동했으며,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며 방 안에 틀어박혔을 뿐이니깐. 당시 세 자릿수에 육박했던 나는 대중교통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정신병자였다. 이 시점에서 나는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어떠한 희망도 버리게 되었다. 이제는 본래의 목적인 대학조차도 나에게는 무의미했다. 하루하루 수시접수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기적 따윈 없었고 나는 내가 생각해도 당연한 실패를 담담하게 마주할 뿐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구원' 오직 절망적인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희망할 뿐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랐던 만큼 스스로에게 깊은 연민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자기혐오와 자기 비난보다 안 좋은 것이 바로 자기 연민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말 같이 자기 연민은 스스로에 대한 관용과 너그러움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실상은 개인을 빠져나올 수 없는 슬픔과 무기력의 늪에 몰아넣을 뿐이다. '나는 너무 안 됐어', '나는 너무 불쌍한 사람이야'와 같은 자기 연민은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아닌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것이기에,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책임이나 상황적 맥락마저 무시한 채 그저 스스로를 딱하게 여기기에 일말의 재기나 회복의 능력마저도 상실한다. 깊은 자기 연민 속에서 나는 왜 사람들이 자살하는지 순수히 깨달았다. 삶이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없기에 사는 곳이 지옥인 사람들에게, 죽음은 곧 구원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깊이 내재된 구원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능과 이성 그리고 관계마저도 그 발길을 붙들지 못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등락이 결정되는 22년도의 초, 나는 지루한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관객의 마음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기억될지를 고민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나마 덜 고통스럽고 사람들에게 덜 상처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었건만, 나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제 영화가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새로운 사건이 전개되는 것 같았다. 내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대학,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본 수능에서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었다. 내가 바라던 대학은 아니었고, 인서울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이 나에게 열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선택은 마냥 반갑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른들에게 맹렬한 분노와 배신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그렇게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기회가 왔으니 지방대를 가라고? 그것도 들어본 적조차 없는 대학을? 당시 우리 학교에서 지방대를 가는 것은 크나큰 실패이자 인생이 망하는 지름길로 간주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은 일이지만 나는 차라리 지방대를 가느니 재수학원에 가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생일대의 기로를 두고 고민하였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 나의 인생이 실패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계획된 죽음을 이행하는가, 아니면 자존심을 버리고 실패로부터 도망쳐 낙오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일 것인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 선택은 To be, or not to be.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아무리 비참한 마음을 지니고 있더라도 삶과 죽음의 선택 앞에서 나는 큰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최후의 순간 나를 움직인 것은 선에 대한 마음도, 악에 대한 마음도 아닌 나의 순수한 이기심이었다. '내가 왜 어른들이 마련한 길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실패 앞에서 너희들은 나에게 책임을 돌리는가? 이 길은 걸은 것은 나이지만, 이 길밖에 없다고 말한 이들도 너희들인데. 그래, 누구도 내 인생에 대해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 너희들의 돈과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며 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겠다.'
그렇게 20살의 나는 대학에 갔다.
다행히 지금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일들이 이후에 좋게 풀렸다. 나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경계로 대학에 갔지만 그런 나를 친절과 포용으로 이해해 주는 성인들이 있었다.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난생처음으로 어른 같은 어른과, 신뢰할 수 있는 선배, 친구로 지낼 수 있는 동기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고, 처음으로 성적과 무관하게 공부하며 학문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 이전에 다른 대학을 가본 적은 없었지만 모든 곳이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특별한 대학이었고 그만큼 특이한 대학이었다. 누군가는 우리 대학을 가리켜 온실 같은 공간이라 비판하지만 나에게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병실이었다. 결국 인간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인간으로부터 치유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함은 어린 시절에만 간직할 수 있는 연약함이다. 나는 가정에서 좋은 것들만 보고 자라며 사회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고, 그 기대를 배신당했기에 사회로부터, 종국에는 자신에게마저 등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건대 그것은 분명 너도 나의 잘못도 아닌 우리의 한계이다. 우리가 벗어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인간의 한계 말이다. 네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고, 나는 그 어떤 말과 노력에도 너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 간직한 인간에 대한 순수함은 곧 내가 바라본 인간의 선한 면들에 대한 기대이자 긍정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긍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선함 뿐만 아니라 악함에 대해서도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잔인함과 비열함, 멍청함 그리고 이기심마저도 기꺼이 인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짊어지려는 것과 같기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이것이 예수와 부처가 칭송받는 이유이고 어린 시절의 내가 실패했던 이유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인간의 한계로부터 스스로의 눈을 가렸고 인간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신성시했기에, 기대만큼 많은 실망을 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선행과 아름다움에 미소 짓지만, 사회의 불행과 비극에는 고개 돌린다. 하지만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모두 하나의 본성 안에 속해있으며, 인간을 긍정하려는 이는 마땅히 인간의 악함에도 미소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진정 강한 자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그 모든 좌절과 실패와 원망의 순간들을 지나고서도 여전히 인간을 긍정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이들일수록 더욱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순수함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을 힘도 주지만 누구보다 잔인해질 동기도 되기에. 우리는 항상 손잡이가 존재하지 않는 칼날을 쥐고 휘두르는 심정으로 자신의 마음이 극단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무고한 타인과 자신마저도 해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
대학교 생활에 대해서 대학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철학과 역사와 문학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다가간 순간들, 음악을 하면서 느낀 별무리를 유영하는 듯한 황홀한 경험들, 그 모든 즐거움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 여러분들 간의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겠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첫 만남에서 나누는 것은 본래의 의도에서도 벗어나니깐. 다음 글에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