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이 답이다
얼마 전 학원 수업에서 한 학생이 숙제를 하지 않고 왔습니다.
저는 습관처럼 “왜 안 했어?”라는 말을 먼저 꺼냈고, 아이는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만 깊숙이 숙였습니다.
그 순간 교실 안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대화는 거기서 끊겨 버렸습니다.
며칠 뒤에서야 알게 된 건, 그 아이가 전날 부모님과 크게 다투고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숙제를 하지 않은 ‘행동’만 보고 아이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날 이후 제 머릿속에 떠오른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크 고울스톤의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법을 넘어, 상대의 마음을 열고 관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 답은 다름 아닌 경청과 공감입니다.
저자는 인간의 뇌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가장 깊은 층은 뱀의 뇌(파충류)로, 본능과 생존을 책임집니다.
길을 걷다 갑자기 차가 달려오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뛰어 피하는 것,
누군가의 지적에 즉시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 위는 토끼의 뇌(포유류))입니다. 감정과 관계를 다루며, 우리가 칭찬에 웃고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눈물이 나는 것은 이 뇌의 작용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바깥층인 인간의 뇌(신피질)는 논리적 사고와 언어, 창의성을 담당합니다.
직장에서 프로젝트 계획을 세우거나 아이의 진로를 고민하며 장단점을 비교하는 활동이 바로 이 층위의 작용입니다.
문제는 대화에서 우리는 흔히 논리(신피질)로 설명하려 하지만, 상대는 이미 본능과 감정(뱀의 뇌. 토끼의 뇌)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설득해도 대화가 막히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뱀의 뇌를 잠재울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안전감과 공감을 주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느낄 만해”, “그게 힘들었겠구나”와 같은 한마디가 상대를 진정시킵니다.
이것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교 Klein(2015)의 연구에 따르면, 공감적 대화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고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해 협력적 행동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즉, 과학적으로도 공감은 사람의 뇌와 몸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닌 것입니다.
책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연결입니다. 우리는 상대가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때 마음을 엽니다.
아이와의 대화, 가족의 갈등, 직장의 협상까지 모든 인간관계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상대의 뱀의 뇌를 자극하지 말고, 마음을 먼저 어루만지는 것. 그것이 관계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작입니다.
“당신은 지금 설득하려 하고 있나요, 아니면 연결하려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