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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실 Sep 20. 2023

잘 가르쳐줬다 상

초등학교 4학년인 채원이는 2년 전 나의 학원에 등록한 여학생이다. 짧은 커트 머리에 하얀 피부, 까맣고 동그란 눈에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


어머니와 함께 온 채원이는 1시간에 걸친 상담 중 이름과 나이, 딱 두 마디만 뱉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이전 영어 학원에서도 대답을 잘 안 해서 선생님들이 애를 먹었어요. 우리 애 잘 부탁드려요."

어머님은 딸아이가 성격이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해서 고민이라 하셨다.


등록 다음 날부터 진행한 채원이와의 수업은 어머님의 걱정 그대로였다. 그 후, 한 달 동안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등원과 퇴원 시 건네는 인사도 모기 같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수준이었다.


영어는 외국어다. 정말 호감이 있거나 어렸을 때부터 노출이 많이 됐던 학생들이 자기 표현도 잘한다.처음 접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던 친구들이라면 부담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채원이는 영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이전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의 열정이 과했던 모양이었다. 소극적이고 영어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던 채원이에게는 다소 버거웠을 것이다. 아이는 영어에 대한 재미도 느끼기 전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나는 평상시 기초단계 학생들에게는 학습량보다 영어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감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채원이 또한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게 급선무였다.

나는 수시로 "채원, You can do it!"을 반복했고, 어쩌다 한 마디라도 정확히 발음하면 박수와 함께 크게 칭찬해줬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단어 위주로 발음하던 채원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문장으로 술술술, 아이는 영어에 재미를 붙였다. 가르치는 나도 신났지만, 아이 역시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9월 초, 아직은 늦여름의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복숭아빛 두 뺨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학원 문을 열고 채원이가 들어왔다.

"Teacher! Close your eyes."

나는 한껏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꼭 감았다. 두 손에 만져지는 촉감은 부드러운 종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떠보니 상장 하나가 떡! 하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잘 가르쳐줬다 상.

"위 분은 아이들 걱정을 해결해 주고, 아이들을 착하게 가르쳐줬습니다. 이 상장을 주어 칭찬합니다."



이름도 생소하지만 책가방 속에 꼬깃꼬깃 접어 놓았다 폈는지 약간은 구겨져 있는 상장이 너무 귀여웠다.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동네 고마운 분을 떠올리며 상장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내가 당첨된 것이었다.


나의 어떤 부분이 고마웠냐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우리들에게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시고, 실수했을 때는 괜찮다고, 다시하면 돼.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라고 말씀해 주신 점이 고마웠어요"


나의 진심이 통했다.

나는 영어 학습만을 위해서가 아닌,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작은 성취감이 모여 자신감이 생긴다는 지혜를 알려주고 싶었다.


2년이 흐른 지금, 채원이는 예비 중등 과정을 학습하고 있다. 가끔 단어 외우기를 힘들어하는 저학년 아이들을 보며 채원이는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곤 한다.

"You can do it! Don't give up!"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려던 나의 노력을 알아차리고 따라와 준 예쁜 채원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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