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우울에 대해서 ‘회피해야 하는 것’ ‘나쁜 것’으로만 보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약해서 그렇다.“, ”언제까지 그럴 거냐?“,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라고.
그러면서 우울은 ‘피해야 하는 것’, ‘해결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울을 깊게 파고들지 않고 그냥 묻어버린다. 그렇게 진리를 죽이고, 깨달음의 길을 죽이고, 정상적인 길을 죽이고 소위 (그들 눈에) 고장난 불량품을 힐난하거나 고친다.
그 누구도 이 찬란한 우울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도대체 우울을 왜 회피한단 말인가?!
그건 고장난 삶이 작동하는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모순이 보이지 않는가? 이게 너희가 말한 ’응당 그래야 라는 일‘ 에 부합하는 일이었나?
그러면서 그들은 우울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꼬리표를 붙인다.
’나약한 놈‘, ’사회 부적응자‘, ’이상한 사람‘, ’정병‘, ’멘헤라‘, ’mz‘ 등등으로.... 이렇게 모욕적인 게 있을까?
이런 세상에 조금이라도 깨어있는 사람은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학문적 지식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모두가 정반대의 것들을 하나인 양 한꺼번에 말하며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가? 정답을 강요하면서도 그 책임은 지지 않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나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가 들면 다 이렇게 된다.“,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다.“같은 말들을 내뱉지 않나?
지식의 시대라고? 객관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좀 더 옛날보다 균형잡힌 사고를 한다고? 이런 뻔뻔한 말이 있나! 그런 당신들의 오만함이야말로 학문에 대한 모욕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아는 미덕은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이라는 건 어떤가? 지식을 폭식시키는 걸 지혜를 가르친 거라고 착각하지 않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똑똑하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우자. 지금 세상에서 니체 시대의 반유대주의자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은 얼마나 멍청한지 이런 비정상적인 것들을 보면서도 정상이라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100년전에 같은 걸 알려준 철학가를 누구보다 좋아하면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걸 넘어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로 생각하며 회피하기 바쁘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를 혐오의 온상으로 내세운다. 이 얼마나 구슬픈 일인가? 그는 내가 그나마 아는 그 누구보다도 지적 정직성을 갖추고 최악을 차악으로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건만....
현대인들은 생각이 많아 불행하다고? 지랄하지 마라!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한 건 아닌가?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제대로 생각이라는 걸 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그 누구도 끝까지 파고들지 않고 중간에는 극단적으로 편한 결론만을 내린 채로 도망치기 바쁘다.
이런 건 우울을 ‘병’ 하나로 축소시키는 역겨운 본능의 결과가 아닌가?
우울이란 무엇인가?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 아닌가? 더 정확히 말하겠다. 내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가 바로 우울 아닌가?
그런데 그걸 해결했답시고 하는 것들을 봐라!
대충 삶이 굴러가기 시작한다고 느껴질 쯤엔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 상태를 ‘좋음’으로 확신해버리지는 않는가?
그렇게 우울을 일으키는 것들 또한 단순한 것으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이 말하는 역겹게 보이는 모순들, 그리고 역겨운 이중성이....
그리고 그런 건 ‘원래 그런 것’, ‘누구나 참고 사는 것’정도로 축소된 채로 또 다른 우울증을 낳는다. 그렇게 역겨움, 즉 ‘데카당스’가 되물림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가? 그대들도 예전에 느낀 바가 있지 않나? 왜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 왜 비판이라는 이름의 조롱에만 숨어 있는가?
일어나라! 보라! 보이지 않는가? 이제는 이기주의자들이 나설 때이지 않는가? 역겨운 위선자들과 투쟁해야 하지 않은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울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내가 해줄 말은 이것이다.
우울을 건너라, 망가진 삶을 고치고 그대들을 되찾으라. 우울을 죄로 여기지 마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대들의 그 방황이, 슬픔과 절망이 그대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노력했는지에 대한 증거다.
누군가 그대들을 비난한다면 나의 글이 그대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글이 그대들을 위해 싸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너희, 아름다운 자들아 포기하지 마라. 삶을 놓아버리는 짓은 하지 말아라.... 그러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이건 그대들만의 잘못도, 남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그대들은 ‘누가 잘못했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의 삶을 망가뜨렸는가?’를 정확히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분명 진리의 문을 열었다. 나머지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뿐이다.... 도중에 멈춰도 괜찮다. 남들이 너희를 이기적이라고 부르더라도 개의치 말고 너희를 되찾으라. 그저 그걸 좋음 하나로 축소시키며 너희를 괴롭혔듯 다른 이들을 괴롭히지는 말아라.
그리고 내 글이 죽었을 때를 대비해 나는 이 말을 더한다.
나의 이 말들이 우울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족쇄가 된다면 나는 미친 놈으로 치부해도 좋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어떻게 그런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우울하다거나 우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거나 우울을 낭만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에게 찾아온 우울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 역설하는 것이다. ‘현재의 정답’에 맞서 ‘또 다른 정답’을 말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그 절망이 그대들의 삶을 끝내 구원으로 이끌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