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현대 로맨스 웹소설 작가 ㅣ 정신건강의학과 내원 기록
22년 4월 21일,
이러다 진짜 죽겠다 싶었다.
잠 못 이루는 새벽.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하듯 밀려왔다. 그러다 지치듯 잠들고 오후에 가까워진 시간에 눈을 뜨면, 숨부터 턱 막혀왔다.
병원에서는 이틀 후인 금요일에 내원하라고 했지만 너무 괴로워서. 더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크나큰 좌절과 지침, 무기력함, 그리고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던 나는 당시 그 시간조차 기다릴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그렇게 당장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진료 전, 10장 내외의 설문지를 작성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문항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매우 그렇다에 체크하는데 눈물이 흘러나왔다. 진료실 앞에서 대기할 때도 눈물이 그치지 않아서 훌쩍거리며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런 모습이 너무 바보 같았지만 그저 죽고만 싶어지는 이 무력감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일로 왔어요?"
"제가… 우울증하고 ADHD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나름대로 잘 추슬렀다고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겨우 첫마디 떼는데 또 울음이 터졌다. 그날 곧바로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22년 4월 25일,
종합심리검사를 받았다. 비용은 34만 원 정도. ADHD에 관련해서는 한 두장의 설문지가 다였고, 거의 현재 정서상태와 지능 평가 위주의 검사였다.
검사 결과는 한 달 후로 진료 예약이 잡혀서 확인을 늦게 했다. 하지만 한 달 전이나 후나, 우울한 마음의 정도는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 후 두 번째, 세 번째 진료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서서히 눈가에 물기가 고이더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도대체 왜 우는지 나조차도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티슈를 건네며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왔다고 하셨다.
"많이 힘들구나."
그 담담한 말을 듣자 나는 내가 많이 지친 상태라는 걸, 다시 한번 자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약을 증량해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울증 위주의 치료가 주로 이루어졌다. 심리검사 결과도 매우 좋지 않게 나와서 정서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고 나왔다.
처방받은 푸로작 캡슐은 안 먹는 것보다 나은 정도였다. 늘,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면 깊은 공허함과 우울감이 기다렸다는 듯이 온몸을 점령했다. 살기가 여전히 싫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마감은 가까워지고,
써야 할 원고는 쌓이는데 주위가 자꾸 분산되는 걸 의식하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몇 달 내내 집중력에는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당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외래진료비를 지원받고 있었는데, 담당자분이 좀 더 작은 병원으로 옮겨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주셨다.
실제로 대학병원은 사람이 정말 많다. 예약한 시간에 가도 상담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기 시간도 길고, 약 처방 위주의 진료로 돌아가는 것도 대학병원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이미 한 달 간을 아무것도 못했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했다'. 정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감이 있었고, 시간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러니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왜 대학병원 다니다가 이쪽으로 왔어요?"
22년 7월 7일,
심리검사 결과지와 그동안 모아 둔 처방전을 들고 ADHD 관련 약력이 있는 선생님이 계신 병원으로 찾아갔다. 우울증도 우울증이지만 ADHD 쪽으로는 전혀 말씀이 없으셔서, 병원을 옮겨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이 들어 내원하게 되었다고 솔직히 말씀을 드렸다.
그 후 내가 느끼고 있었던 ADHD 관련 증상을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빠른 시일 내에 주의력 검사(비용은 12만 원 내외)를 받아보자고 하셨다.
"ADHD인 사람들은 좌절을 겪기 때문에 푸로작을 먹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처방받았던 약을 계속 먹으라고 했다. 이전 병원에서 처방받았던 약이 떨어지면 또 처방해준다고 하셨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7월 18일 월요일, 병원을 내원하였고 ADHD 진단을 받았다.
병원을 나오면서 그간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왜 나는 남들보다 최소 두배, 또는 그 몇 배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는지.
왜 그토록 결과가 달랐는지.
그저 타고난 성향이 게을러서이겠거니. 남들보다 덜 똑똑하기 때문에 좀 더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치부해버렸던 과거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늘 깜빡해서 다시 물건을 가지러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던 나.
억지로 내면을 가다듬으며 토익시험을 공부할 때의 나.
충동적으로 말을 뱉던 나.
항상 어질러져 있던 내 방….
앉아있다가도 상체를 자꾸만 움직이고, 일어났다가 앉았다를 반복하는 나의 모습도 뇌리를 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앉아있으려고 했던,
집중이 조금이라도 되기 위해 커피를 그렇게나 마셔댔던.
늘 노력하고 있었던 내 삶.
남들과는 조금 다른 뇌로 애쓰고 있던 내가 안쓰럽고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그러면 더 좋았을텐데….
푸로작 캡슐 20mg 2정.
메디키넷 리타드 캡슐 5mg / 아침 점심 식후 1정씩, 총 2정
푸로작이 내가 계속 먹는 항우울제고(강박증에도 쓰는 약이기도 하다) 메디키넷이 ADHD 약이다.
극히 소량이니까 크게 걱정되지는 않지만, 일단 부작용이 있는지 먹어 보고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하셨다. 아마 다음 주엔 조금 더 증량된 용량으로 복용을 할 것 같다.
보통 콘서타를 많이 처방받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메디키넷 복용 기록을 이곳에 남겨 보려고 한다.
그리고 7월 19일 오늘,
ADHD 약을 먹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아침 루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매일 7시 55분에 일어나서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그 후 컴퓨터 전원을 켜고, 아침을 준비하며 커피를 내렸다. 다이어리도 쓰고, 경제매거진도 읽었다.
푸로작을 복용하고 메디키넷 5mg을 처음 삼키는 순간, 눈물부터 났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많이 많이 쓰고 싶었다.
집중해서 좀 더 양질의 글을 쓸 수 있게만 된다면 약 먹는 것 따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재능이 없어.
이쯤 되면, 나는 작가 할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내 글은 쓰레기야.
비교와 부정, 자책과 비하는 나를 좀먹는다는 걸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하루하루 고통과 괴로움이 목을 죄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작가로서 사는 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우울을 끌어안은 채, 집필하기 위해 매일 아침 아래아 한글을 켠다.
우울증 극복이니, 성장을 하니 마니 그런 건 솔직히 모르겠다.
난 어차피 마음이 병들어서 글로 남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건 글러먹었다.
그저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남들과는 다른 전두엽으로
어떻게든 없는 집중력 있는 집중력 온갖 거 다 끌어와 글을 쓰려고 하고,
어떻게든 작가로서 살아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진실성 100%의 이야기다.
그리고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로 나를 동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난 내가 불쌍하지 않다.
윤츄 yoon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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