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분야 박사 도전기
많은 분들이 박사학위에 도전한다. 젊어서 좋은 두뇌와 환경 속에서 쉽게 박사학위에 도달하는 분들도 있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학위를 취득하는 일은 그래도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결심한 것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구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없을 바에야 가장 지식을 많이 갖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지식주의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승승장구하듯이 법학과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고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을 진행하다가 그만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상담심리학의 학위취득 중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받다가 자료불량으로 중단하는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인해서 나는 큰 실망을 갖게 되었고,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박사학위취득을 위해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나 자신의 부끄러운 기록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통 박사학위취득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심사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지도교수님과 논문주제 선택에 이어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심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보통 3번 정도의 심사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지난번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논문 도전은 많은 무리가 있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도전했다. 수합된 데이터도 엉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통계를 돌려주시는 분이 개인사정으로 제대로 협조해주시 지를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력하면 된다 하는 생각으로 혹시 하는 마음으로 요행을 바랐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보통 3심까지는 가는데 나의 논문은 논문심사 2차에서 정말 부결되고 논문심사가 보류되면서 자동 중지되었다. 5명의 교수님은 일관적으로 조목조목 나를 비난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고 머릿속은 심사장에서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특히 지도교수님은 앞장서서 나를 비난했다. 나는 모멸감으로 몸을 떨었고, 논문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정말 논문을 쓰는 것은 힘들구나,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나 하는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무슨 일도 해도 안 되는 사람일까? 정말 안될까 하는 생각 했다. 가장 나에게 고통을 주며 폐부를 찌르는 말이 심사과정에서 있었다. 그것은 지도교수님의 "선생님은 글쓰기가 안돼요!" 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말이 없었다.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말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가난하고 암울한 사춘기를 보내면서 나도 모르게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이 없어도 생각은 많을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나는 생각도 모든 것이 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 시절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어떻게 보면 집안에서 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들은 막내인 나에게 유아기, 초등학교 유년기에는 너무나 잘해 주셨지만, 부모님들이 연로하시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족 간에도 방치되고, 소외되기 시작했다. 나의 친구들은 옷차람이 깔끔했는데, 나는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부족했다. 친구들과 잘 사귀는 붙임성이 부족한 나는 자연스럽게 혼자인 것이 편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 당시 눈 주변에 상처가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항상 불안하게 했고 나는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특히 이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호의를 이성에게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나에게 암울한 시기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때가 암울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흑역사가 시작되어 직장에 들어가서도 혼자 있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나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직장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술 마시고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것을 제외하고 나에게는 그래도 취미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책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좋았다. 첫 번째 법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자격증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자격증을 딸 때마다 내 인생의 존재감이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학위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공계통을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누구나에게 필요한 법률지식을 높이기 위해서 법학과에 도전했다. 그래서 법학학사에 이어 석사, 박사를 마치고 영예로운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헌법이었는데 그중에서 인권분야를 전공했다.
나는 인권의 매력에 푹 빠졌다. 특히 여성의 인권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많은 연구와 사고가 서로 간에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는 것은 바로 이분법적인 사고와 관련이 있었다.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유산자와 무산자의 경우가 그렇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세력은 나머지 세력을 타자화하고 차별을 시작하며, 그것은 오랜 역사를 거쳐 심화되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시각을 다르게 하여 고정관념을 없애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첫 번째 학위의 논문주제도 인권으로 삼았다. 미국의 흑백이분법에 의한 차별의 역사가 주제였다. 나는 나름대로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기본이 되는 것이 법학이다. 법학 중에서 나는 헌법학을 공부했다. 헌법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최상위법인 근본규범이면서 기본원리인 성격이 강하다. 헌법을 공부했다는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를 공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에는 민주주의 원리, 평등의 원리, 자본시장의 원리, 정부부처와 기관에 대한 이야기 모두 다 나와 있다. 헌법을 읽지 않고는 우리 사회를 알아간다는 것은 어렵다. 헌법을 공부하고 나는 우리 사회의 아우트라인을 깨닫기 시작했고, 나뿐만 아니라 타인,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 사회복지학 주제도 장애인의 인권감수성의 향상과 관련된 것이었다. 장애인복지업무를 추진하면서 장애인인권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장애인거주시설을 담당하면서 그래도 어렵지 않게 장애인거주시설의 종사자들의 인권감수성이 학대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완성하여 학위를 받았다.
사회복지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학문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자들에게서 걷어 들인 세금으로 사회적 약자인 계층을 돕는 일이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우리 사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길이었다.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째로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상담심리학이었다. 사람들과 수준 높은 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설득적인 대화법의 시작은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공감을 얻는 상담이야말로 내가 학문의 종착역으로 생각하는 것과 많이 부합되었다.
상담심리학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가벼운 직장인의 스트레스였다. 누구나 갖고 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나가서 소진을 예방하는 가 하는 것이 논문의 주제였다. 직장인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부였고 논문주제였지만 나는 이러한 주제를 논리적으로 풀지 못하였다.
게다가 시간도 너무 촉박해져서 제대로 2차 논문심사본을 만들지 못했다. 그 결과 지도교수님들의 깎아내리는 치명타를 받고 슬픔에 빠져 버렸고, 나를 자신의 논문지도명단에서 제외시켜 버렸고 나는 다른 지도교수님을 찾아야 했다.
박사인구 30만 시대라고 한다. 길 가다가 박사님 하면 전부 다 쳐다본다고 한다. 그렇게 박사가 많은 세상에서 이제는 박사다운 박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사다운 논문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번의 가슴 아픈 실패를 거울삼아 향후 나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하는 공부 속에서 실패의 트라우마를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조언하시는 교수님들의 얼굴이 계속적으로 떠올라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다. 하지만 어쩌랴, 자업자득인 것을 가장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생각했다.
작년 재도전으로써 작년초 새로운 지도교수님과 함께 다시 한번 힘을 내서 논문다운 논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논문이 완성되었고 세 번의 논문심사를 무사히 통과하여 나는 결국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박사학위 수여식에서는 총장님으로부터 공로상도 받았다.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3개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법학, 사회복지학, 상담심리학을 전공해서 모두 석사와 박사과정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이다. 기념으로 박사모와 가운을 대여하지 않고 구입해서 평생 소장하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물어본다!
굳이 3개 분야 박사학위를 받을 필요가 있었냐고라고 물어보면 사실 아직도 정확히 대답할 거리는 찾지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퇴직 후 행복연구소를 차리기 위해 상담심리에 이어 상담심리의 하나의 분야인 언어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내 인생의 공부가 언제 끝날 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 하루하루에 충실할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