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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May 11. 2022

자세를 똑바로 하지 않는 자 고통을 받으리니!

반갑지 않은 불청객, 어깨 통증

  올해 초에는 건강관리를 잘하자고 큰 계획과 결심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게 오른쪽 어깨가 아프고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나아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팔까지 저려오기 시작했다. 손가락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지난달에 걸렸던 코로나 백신 후유증인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나는 원인도 알 수 없고 고통을 계속적으로 참을 수 없어서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계속했지만 조금 나아질 뿐 일시적으로만 좋아졌다. 사람은 아프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계획했던 일을 대폭 축소하고 안정을 갖기로 하였다. 통증클리닉에 가서 주사도 맞고 정형외과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우연히 "아빠! 거북목이 심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거북목에 대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거북목은 목뼈가 앞으로 아치형으로 나와야 하는 데, 목뼈가 일자형이 되는 것으로 책 보기, TV보기, 특히 컴퓨터를 장기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생긴다고 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자세를 정확히 볼 수 없다. 타인이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나의 어깨 통증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거북목 때문인가? 아니면 자세가 좋지 않게 진료받았던 치과치료 때문인가 하는 하면서 나름대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며칠 전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았다.  가장 안쪽의 치아에 덮여있는 보철을 떼어 나고 신경치료를 하게 되었다. 단순히 신경치료를 받으면 되겠지 무심코 넘겼지만 오산이었다. 입을 벌리고 1시간이 넘는 동안 턱을 벌리고 있어야 하는 고통의 순간이 이어지는 치료였다. 첫날의 치료는 무심코 넘어갔지만 나는 두 번째 치료 날 나는 1시간 동안 입을 벌리고 있으면서 특히 고개도 불편한 상태로 있어야만 하였다. 나는 불안정한 자세로 목의 통증이 심했지만, 치료를 위해서 어떤 표현도 하지 못했다. 치아를 갈아대는 듯한 음향은 나를 거의 실시하는 상태로 이끌면서, 어린 시절의 치과치료를 받았던 트라우마를 떠오르게 했다.


 흑석동의 가난한 가정의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막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하지만 막내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연로하고 몸이 불편이 드신 부모님은 막내아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을 주기 어려웠다. 어렸을 때의 지나친 관심과 사랑은 나를 매우 의존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매우 의존적인 사람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어렸을 때의 성장과정은 사람의 독립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막내로 의존적으로 자라난 나는 지나친 어리광 속에서 성장하면서 나는 스스로 하는 독립심이 매우 미약했다. 일례로 어렸을 때 칫솔질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칫솔질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단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부모님은 막내라는 이유로 다른 형제들보다는 나에게 초콜릿을 다 몰아주셨고, 나는 사탕이나 초콜릿을 입에 물고 잠이 드는 수가 허다했다. 초등학교 때인데 나는 무심코 사탕을 먹다가 집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잠을 깨을 때 치아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 나는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충치가 전 치아를 공격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극도의 공포에 빠지고 가난한 집의 자식이었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돈이 없는 부모님에게 치과에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혼자서 끙끙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아버지에게  충치로 고통받고 있음을 말씀드렸다. 그 당시 치과 치료를 받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동네에 있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중앙치과라는 간판의 치과로 나를 데려갔다. 원장인 치과의사는 요즘의 나이로 따지면 80이 훨씬 넘어 보이시는 노인이셨다. 하얀 가운 입고 계셨는데 얼마나 낡고 때가 묻어 있었는데, 털털한 내가 보기에도 빤 지 오래되는 가운이었다. 

 병원에는 정식인 간호사도 안 보이고 동네 사람이 임시로 그냥 누군가 도와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는 마취를 하지 않고 치과치료를 했다. 이를 갈아대는 소리와 함께 나는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어린 나이에 마취를 하지 않은 치과치료를 받을 때 나는 긴장으로 어깨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파김치가 되고, 전신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소진된 상태로 며칠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동안 어깨 통증으로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 당시 나에게 주어진 그 고통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 치과 치료 두 번째 날부터는 마취를 하지 않고 신경치료를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극도로 긴장하고 치료에 들어간 순간부터 목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신경을 치료를 하면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고통스럽게 경직하게 만들었다. 나는 목이 뻣뻣해 오면서 신경계가 마비되는 듯한 통증을 맛보아야 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신경치료를 통하여 완전히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빠져들었다. 거의 마지막 고통 속에서 나는 완전히 실시하였다가 의식을 회복하였다.  치료가 끝난 후 목을 움직일 수 없었다. 천신만고 긑에 간신히 귀가하여 집에서 휴식과 안정을 취하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실수가 큰 결과로 이어지는 수가 많다. 따라서 그 원인을 정확히 알아보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때 그때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나 분석으로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깨 고통으로 인해 나는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다. 어깨 통증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깨 통증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앞으로 어깨 통증의 완하를 위하여 평소 스트레칭을 잘하려고 한다. 


 오늘도 생각해 명심해 본다!  자세를 똑바로 하지 않는 자 고통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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