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친구들의 "순해도 너무 순해!"라는 감탄이 마음에 걸렸고, 엄마를 찾지 않고 구석에서 책을 보는 아이의 모습이 편하지 않았다.
함박눈이 많이도 내렸던 1월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아이를 선생님이 불렀다.
“시은아, 잘 가.”
아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걸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표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뒤에 나오는 다른 아이, 우리 셋째보다 몇 개월은 늦은 아이가 선생님께 혀 짧은 소리로 인사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아이를 유모차에 급히 태우고 작은 오빠를 데리러 가기 바빴다. 그날은 아이를 앞서 세우고 몇 걸음 뒤에 가며 계속 말을 걸었다.
“우리, 눈놀이 하고 갈까?”
“시은아, 눈 밟으니 어때.”
“눈 정말 많이 왔다, 그지.”
앞에 가는 아이에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아이가 말이 늦는다고만 생각했다. 셋째라 조바심이 없었고 잘 놀고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아이에게 크게 불안함도, 걱정도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가 두 사춘기 오빠들 핑계로 나의 귀한 막내를 너무 혼자 둔 것일까. 아이가 하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챙겨주었고, 많이 놀아주지도 못했다. 두 돌의 호명반응. 그것이 ‘0’이라는 것도 그 날에서야 깨달았다.
다시 되돌려 생각해보니 21개월 이후 아이는 발달하지 않고 있었고, 정지 또는 퇴보 하고 있었다. 두 단어까지 붙여 말하던 단어가 다시 한 단어가 되었고 오빠와 노는 것에 관심이 줄고, 혼자 책보기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