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직 둘 뿐인 세계의 종말과 남은 흔적들
로봇과 강제로 헤어진 후, 도그는 로봇의 빈자리에 크게 괴로워합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놀고, 혼자 일하던 이전의 생활로 돌아왔지만 더이상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로봇과 함께하던 ‘둘만의 생활’이 더욱 그리워질 뿐입니다. 그렇기에 도그는 스키 캠프를 신청하여 새로운 취미를 만들거나, 공원에서 새 친구를 사귀면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스키캠프에서는 숙련자들의 텃세에 괴롭힘을 당하고, 기껏 사귄 새 친구는 이민을 가버리며 도그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버립니다. 결국 도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새로운 반려로봇을 고민하게 됩니다.
한편, 로봇은 고물상으로 팔려가며 또 다른 주인과 만나게 됩니다. 부식되고 고장난 몸체는 새로운 기능의 몸체로 개조되고, 로봇의 외관부터 주변 환경까지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로봇도 새로운 주인과의 삶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도그를 향한 마음은 그대로이지만,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새 주인 ‘라스칼’에게 더욱 집중합니다. 영원히 로봇과 도그, 오직 둘뿐일 것 같던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로봇드림>은 도그와 로봇의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모든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둘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비롯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그들은 나에게 어떠한 경험과 추억을 주었는지, 그중 떠나간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등, 영화 속에는 인간관계를 철학적으로 생각해 볼 소재가 많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결말을 맞이한 도그와 로봇이 이별을 양분 삼아 성장한 것처럼, 어쩌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도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아닐까요? 지나간 과거의 인연도, 그리고 현재의 인연도 모두 그대로 쌓여 추억이 되고, 그 사람이 곁에 없음에도 나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되어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여러분에게 스쳐 지나간, 혹은 스쳐 지나가고 있는 만남 중 당신을 이루고 있는 특별한 인연은 무엇인가요?
2. 어제는 가축, 오늘은 가족
과학적 고증을 꼼꼼하게 신경쓰는 다른 로봇 영화와 달리, 오히려 <로봇드림>은 로봇을 소재로 다루지만 과학적 고증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덕분에 관객은 로봇을 더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반려로봇은 도그가 먹는 핫도그나 아이스크림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으며, 바다에 들어가 자유롭게 수영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절대 망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과 직접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도 하며, 스스로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고, 도그를 통해 세상의 규칙과 살아가는 방식을 학습합니다. 특히 로봇임에도 악몽을 꾸거나, 행동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다른 종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로봇보단 인간과 닮아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영화 속의 도그와 로봇도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며, 타인과 소통을 함으로써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또한 로봇은 소유권을 구매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반려동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의사가 아닌 소유자에 따라 거주 환경이 달라지고, 돈을 지불해야 데려올 수 있다는 점은 분양과 입양이 이루어지는 반려동물의 특징에 해당됩니다. 게다가 한번 소유자로 인식하면 그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점도 동일합니다.
반려로봇은 자신을 세상에 나가게 도와준 첫 번째 조력자, ‘소유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그에게서 지식과 규칙을 습득하여 행동합니다. 도그의 로봇도 음식을 먹고 지하철을 타는 기본적인 방법을 도그에게 배우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배를 모는 방법처럼 오직 도그의 취향이 반영된 지식을 습득합니다. 즉 도그의 로봇은 인간과 반려동물 모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영화 속에서는 ‘누군가의 특별한 인연’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특별한 인연’인 반려로봇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요? 반려로봇은 소유자에게 친구이자 가족 이상의 존재이지만 그 품을 벗어나면 한낱 고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로봇드림>의 세계관은 로봇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익숙한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로봇을 친구처럼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해변에 남겨진 로봇은 불법 수거업자에 의해 악어가 운영하는 고물상으로 팔립니다. 거센 바닷바람을 일 년간 맞은 로봇은 이미 여기저기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악어는 망가진 로봇을 대충 고철더미로 던져버리고, 로봇은 그대로 팔다리가 부서진 채 땅바닥에 나뒹굽니다. 이 장면은 <로봇드림>에서 가장 폭력적이고도 잔인한 장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존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물건보다 못한 존재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즉 이 사회에는 로봇을 동등하게 대하는 유형과, 그렇지 않은 유형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을 가족으로 대하는 도그와 물건으로 대하는 악어는 반려동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현대 사회에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동물은 가축일 뿐이라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가축으로 여기는 인식이 다수였다면, 현재는 가족으로 여기는 인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악어는 현재의 주류 문화에서 동떨어진 ‘과거’를 뜻하는 캐릭터로 표현됩니다. 악어가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는 고물상에서 일한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인식을 대표하는 도그와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과거'의 특징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어가 현재의 문화와 다르다고 해서 영화 속에서 부정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상반된 캐릭터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인식, 그리고 나와 다른 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영화는 어느 한 쪽을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관객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누군가는 도그에, 또 다른 누군가는 악어에 이입하여 영화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사회는 현재의 우리 사회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외로워지면 허전한 빈자리를 채워줄 누군가를 원하고, 감정적인 교류를 위해 타인을 만나며, 나와 다른 종을 접하면 그들을 받아들이기도, 그리고 배척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양하게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드림>은 이러한 인간 사회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캐릭터를 동물로 설정하여 익숙한 우리 사회를 낯설게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 자아가 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을 명확히 나누고, 자아가 있는 동물에게는 주된 역할을 부여하여 표현 대상이 인간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로봇을 자연스럽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관을 통해 인간 사회의 이상과 현실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영화 속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입니다. 다만 실질적으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불법 수거업자에 의해 팔려간 로봇처럼 빛이 들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소외가 발생하고,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사례들도 존재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사례들을 그대로 관객에게 보여주며 어떠한 교훈적 메시지나 우화적 메시지도 던지지 않습니다. 관객이 온전히 자신의 언어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로봇드림>이 보여준 동물들의 사회를 통해 무엇을 발견하셨나요? 그리고 엔딩을 맞이한 순간 당신이 도출한 결론은 무엇인가요.
3. 순간의 연결들로 이루어진 우리
도그와 로봇은 운명적인 재회를 하지만 다시 한번 이별을 선택합니다. 그들의 마지막 이별은 서로의 새로운 상대를 위해 마주침조차 티 내지 않는 조용한 헤어짐이었습니다. 이후 엇갈리는 둘의 모습을 배경으로 <September> 노래가 등장하며 관객은 도그와 로봇의 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영화의 결말은 무성극이라는 특성상 대사 한 줄 없이 처리됩니다. 그러나 “Do you remember? (기억하니?)” 라는 노래의 가사가 그들의 지나간 과거를 다시 불러옵니다. 서로를 그리워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서로가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추억을 흘려보내며 새로운 삶을 맞이한 둘은 진정한 이별을 경험합니다. 결말의 여운이 짙게 남는 것도 두 캐릭터가 허무한 이별을 어른스럽게 소화했기 때문입니다. 아프기도, 그립기도 한 지난 추억들을 잘 보내주는 두 캐릭터의 모습은 관객에게 ‘좋은 이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감정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로봇’이라는 존재가 헤어짐을 통해 감정적 성숙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관객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남깁니다.
<로봇드림>은 ‘해피엔딩’이라는 애니메이션의 공식을 정석적으로 따르고 있는 작품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별을 맞이한 두 캐릭터가 해피엔딩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두 캐릭터는 성숙한 이별을 통해 더욱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성장은 서로가 곁에 없음에도 그 사람과의 시간이 경험으로 쌓여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즉 관계의 본질은 영원하자는 약속이나 다짐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들에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나간 인연들을 잘 보내주는 법,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잘 간직하는 법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좋은 이별, 성숙한 마무리란 무엇일까요? 나를 스쳐간 수많은 만남이 쌓여 현재의 ‘우리’를 만들어내는 지금, 여러분은 서로의 영혼을 완성할 추억들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Editor : G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