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 팬 소통용 어플 메시지로 만든 ‘럭키비키’라는 신조어가 있다. '부정적 상황에서의 긍정적 사고 활용’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이전에 유행하던 ‘오히려 좋아’라는 밈과도 의미의 맥락을 함께한다.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언럭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럭키OO’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상황을 좋게 해석함으로써, 분노와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게 된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만큼 성장한 <인사이드 아웃2>의 라일리에게도 점차 부모님이 해결해줄 수 없는 ‘언럭키’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친구 관계에서, 진로에서, 나를 평가하는 외부의 시선에서 여러 변수들을 겪으며 라일리는 그간 소중하게 만들어냈던 ‘좋은 사람’이라는 자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된 라일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그 전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럭키’한 사람이어야만 하는가?
1. 원초적 감정 VS 사회적 감정
<인사이드 아웃1>에서 한 차례 큰 위기를 겪었던 다섯 감정(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은 ‘기쁨이 가는 곳엔 슬픔도 함께한다’는 중요한 명제를 깨달은 이후 원활한 팀워크로 라일리와 함께하고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2>에선 전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이 등장하는데,아동에서 청소년이 된 라일리의 핵심기억들이 모여 구성된 신념 저장소다. <아바타>의 생명의 나무와도 비슷한 신념 저장소의 커다란 줄기는 라일리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끔 자아를 만들어 낸다. 라일리의 신념 저장소는 기쁨이의 지휘 아래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다섯 감정들은 이렇게 신념 저장소를 통해 사랑스럽고,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이며, 항상 운이 좋은 라일리의 자아를 관리하면서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무탈히 지속될 것만 같던 다섯 감정들의 팀플레이엔 라일리의 ‘사춘기’라는 비상등이 켜지고 만다. 라일리의 사춘기는 별다른 전조증상이나 계기없이 재난처럼 갑작스레 찾아오게 되는데, 실제로 사춘기의 신체적·정신적 변화란 호르몬 분비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것은 당사자인 아이가 억제하고 싶다 하여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맞이하는 사춘기의 돌풍 속 기존의 감정들이 제어판 조종의 감도를 잃어버린 와중 초대받지 않은 새로운 감정들이 불쑥 입주한다.
‘불안’, ‘당황’, ‘따분함’,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라일리의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원초적 감정들과 달리 라일리가 가족 외의 사람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학습하게 된 사회적 감정들이다. 개중 미래 예측과 부정적 상황을 대비해 주는 역할의 ‘불안이’는 원초적 감정들의 컨트롤이 어려워지며 생기게 된 ‘언럭키’한 상황들을 대신 수습해 주며 기쁨이 대신 리더의 책임을 맡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유대감보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면서 라일리는 원초적 감정들을 억제하고 사회적 감정을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결국 불안의 역할의 너무 커진 나머지 원초적 감정들은 라일리의 ‘비밀의 방’으로 감금당하고, 라일리는 자신을 이루고 있던 좋은 점들 대신 남들과 비교했을 때 보이는 부족한 점들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 대한 가치판단을 준거 집단의 채점 결과에만 의지하는 현상은 입시 과정에 발을 내딛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흔한 실수다. 자신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점수화되고 등수로 매겨지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진로를 선택하고 발전해 나가는 감정에 ‘불안’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이것은 청소년 개인 심리의 미숙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장기 아이들에게 능력주의를 과도하게 강제하는 사회 제도와 분위기의 책임이 더 큰 사안이다. 단순 불안을 넘어 공황 증세로까지 나타나는 라일리의 정서적 불안을 장면화했으나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전혀 비추지 않은 나머지 과도한 불안함의 원인이 사춘기 소녀의 감정조절 실패로만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인사이드 아웃2>의 가장 아쉬운 점이다. 사회적 감정을 배우는 청소년기 아이를 다루고 싶었다면, 그 아이가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낸 어른들의 책임 역시 다루었어야 했다.
2. 좋은 사람과 부족한 사람, 그리고 특별한 사람
완벽한 호흡의 작전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친한 친구와 나를 사랑해 주는 부모님, 꿈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라일리는 왜 ‘부족한 사람’이 되어야 했을까.
‘좋은 사람’이라는 자아를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 버린 불안이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관리하기 위해 라일리가 실패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려 든다. 타당한 전개이든, 엉뚱한 상상이든 라일리가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없는 경우의 수는 밤을 새워 대비해도 모자랄 만큼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만약 라일리가 하키 캠프에서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여 고교 하키부에 캐스팅이 되었다면, 불안이는 폭주를 멈추고 안정적인 상태로 일할 수 있었을까? 벨과 라일리가 같은 무리에 속한다면 기억의 저편을 헤매던 원초적 감정들 앞에 본부로 돌아올 다리가 놓여졌을까?
우리의 삶은 수많은 장기적 목표와 그보다 더 엄청난 수의 단기적 목표를 수행해 나가며 진행된다. ‘벨처럼 되고 싶다’는 라일리의 현재 목표는 ‘성적이 뛰어난 하키 선수가 되고 싶다’는 장기적 목표의 이전 단계이다. 라일리가 하키 캠프에서 세 골 이상의 득점을 만들어 내어 벨과 같은 고등학교의 동료가 된다 하더라도 라일리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만약 하키를 시작한 이유가 ‘1군 선수가 되어 부족하지 않은 연봉을 받는 것’이었다면 후에 높은 소득을 벌게 된 하키 선수 라일리는 오랜 목표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전편에서부터 지켜봐왔듯 라일리는 하키를 할 때 가장 큰 즐거움과 자기효용을 느끼는 아이였고, 하키 선수를 꿈꾼 이유 역시 하키 경기를 통해 얻은 긍정적 기억들의 영향이 큰 사람이다. 타인과 비교하여 부족한 점을 메우는 데 집중하다 더 이상 하키가 ‘즐겁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면, 라일리의 불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감정이 되는 것일까.
영화는 우리의 정서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좋은 사람’이라는 자아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아도 적절치 못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자아를 유지하려면 우리는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나의 성향과 특성들을 모두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야 한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익숙한 환경 속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자아를 유지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엔, 슬프게도 예외가 없이, 급격한 환경의 변화와 돌발상황이 일어난다. 변화의 시점에서 우리는 여유를 잃고 마치 사춘기를 처음 겪게 된 라일리처럼 미숙해지고 만다. 그때의 우리는 누가 봐도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 된다. 내가 바라는 나의 완벽한 미래에 비해 현재의 내 모습은 너무 작고 초라하다. 나의 옆에 있던, 나보다 한두 발짝 앞에서 나를 이끌어주던 사람들이 가시적인 결과를 내보이기 시작한다. 부족한 점을 가시적 변화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마음껏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할 여유는 없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나를 객관화하고 불안을 원료 삼아 스스로를 닦달해 나갈 뿐이다. 불안의 역할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며 우리의 안에선 한 가지 의문이 피어난다. “과거의 나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의 좋은 점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거야?"
아마도 ‘무의식’의 은유적 표현일 ‘기억의 저편’에서 기쁨이는 그간 라일리에게 필요 없는 기억이라 치부했던 실패의 기억들을 신념 저장소로 흘려보낸다. 그러자 라일리는 그간 자신이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을 겪어 왔음을, 그 실패들을 딛고 반성하고 때로는 방향을 우회하며 지금의 ‘나’를 지켜내 왔음을 깨닫는다. 사실 라일리는 세상에 태어난 이후 한 번도 완전히 ‘좋은 사람’이거나 ‘부족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라일리는 늘 라일리, 때로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다른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사랑스러운 점 역시 가득한 ‘특별한 사람’이었다.
3. 이별 없는 팀원들과 좋은 팀 만들기
세상을 살아가며 개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는 자주 어떠한 목적을 수행해 내기 위해 사람을 모아 팀을 만들고 그룹 형태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를 다소 과격하게 요약하자면 죽기 전까진 절대 이별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대체로 안정’된 상태의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다. 라일리가 불안정해진 정서로 겪는 여러 위기는 우리가 그간 겪어왔던 팀 작업의 경우들을 대입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좋은 팀이란 무엇인가. 일단 초단기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진 임시적 팀이 아닌 이상 팀원들을 관리하고 중요한 결정을 책임지는 팀의 리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리더는 독재와 지나친 수용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인사이드 아웃1>의 기쁨이는 자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팀원(슬픔이)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하고 배제한 나머지 라일리의 위기를 초래했다. 일련의 사고로 인해 기쁨이가 자리를 비운 본부에서 남은 감정들은 기쁨이의 지시 없이 어떻게 제어판을 운영해야 할지 몰라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상황들을 만들었다. 이는 평소 라일리의 정서를 관리하는 업무 대부분이 기쁨이에게 과중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고 적극적인 리더라 할 지라도 업무의 대부분이 한 사람의 몫으로만 치우쳐져 있는 팀은 약간의 금으로도 쉽게 무너질 댐이다. 완벽해 보이는 리더도 신이 아닌 미숙한 인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1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만약 나의 정서가 한 가지의 감정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거나, 혹은 어떤 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좋은 팀’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업무 분배가 적절한 팀을 만들고 싶다면 기쁨이의 말대로 ‘기쁨이 가는 곳엔 슬픔도 함께해야’하는 법이다.
<인사이드 아웃2>를 같은 방식으로 요약하자면 기존 팀원들이 새로운 팀원들의 합류로 어지러워진 팀의 구조를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개편해 나가는 이야기다.
기존의 다섯 감정(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과 새로운 감정들(불안, 부럽, 따분, 당황)은 서로의 능력과 역할, 장단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협업을 시작한다. 기쁨이가 그간 라일리를 위해 사용했던 ‘언제나 럭키한 라일리 만들기’ 전략은 유년기 시절의 소규모 프로젝트에선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라일리가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관계 맺는 사람들과 요구받는 책임들이 생기면서부터는 ‘언럭키한’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졌다. 해당 전략의 내용은 2번 핀에서 이미 서술했다.
라일리의 스트레스를 관리해 주고 라일리가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원초적 감정들과 라일리의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서포트 해주는 사회적 감정들은 결국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사랑하는 라일리가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실패의 경험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냈던 기쁨이의 선택도, 과도한 압박으로 라일리를 공황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던 불안이의 폭주도 결국은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행했던 시행착오들이었다.
이제 사춘기의 큰 위기를 한번 넘었을 뿐인 라일리의 팀원들에겐 수많은 위기와 시행착오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머리 속 팀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의 정서를 관리하는 리더 역할의 감정은 누구일까? 나의 정서팀에서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거나 과중된 팀원은 없는가? 나는 아직도 ‘좋은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이란 양극단의 자아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머리 속 팀원들은 내가 죽기 전까지 영원히 공생하며 나를 위해 일해줄 존재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 그대의 이름이 라일리가 아닌 그 누구일지라도.
Editer: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