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nnect #4
"상범이 형이 죽었단다. 남자는 돈 못 벌면 끝이야."
내가 마지막으로 본 상범이 형은 알코올 중독에 시달린 나머지, 찾아온 나와 아내를 제대로 맞이하지도 못한 채 방 안에서 지쳐 있었다. 작은 고모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던 형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형이 죽었다.
도대체 술이 뭐길래. 우리나라에서 술을 마시는 건 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 술잔을 기울이며 보내는 밤은 즐거웠다.
좋은 사람들과 추억을 쌓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그 허비한 시간조차 나는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오늘부터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무척 좋지 않아 보였다. 안색이라는 게 있다. 일반적인 피부톤이 아닌, 건강하지 못한 빛깔이 있다. 손끝에서는 저린 내가 나고, 목은 끈적이며, 이마에서는 기름이 배어 나와 몸에서 나는 냄새마저 불쾌감을 주었다. 거울 속 모습이 이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더러운 것처럼 느껴졌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날들을 지저분하게 살아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특히 술 마신 다음 날이면 그 특유의 불쾌감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거울에 드러났다. 미간은 일그러져 있었고, 화장기 없는 목과 어깨의 피부색은 다른 부위와 판이했다. 어디가 문제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피부색이 탁했다. 주변에서도 안색이 좋지 않다고 물었다. 차마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요즘 잠을 못 잔다고 둘러댔다. 어제 술을 마셨다는 진짜 이유는 삼켰다. 20대 때는 술을 많이 마셨다. 지독하게 마시는 걸 좋아했다. 취하는 기분도, 취기가 오래가는 것도 좋았고, 심지어 숙취로 하루를 보내는 것조차 낭만적이라 여겼다. 술은 감성적인 소통 수단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다툼이든, 느끼는 감정을 증폭시켜 용기를 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다독이기도 했다. 그때는 술이 내게 정말 소중한 수단이었다. 술이란 존재 자체를 낭만적으로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에는 균형이란 게 없다. 한쪽으로 기울수록 술은 나를 잠식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어도 취해 있어서 잠들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고,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밀려났다. 처음에는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벽에 갇힌 듯 빠져나갈 용기를 잃어갔다. 남들이 하루 만에 하는 일을 일주일이나 걸려 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말처럼 현실이 왜곡되어 보였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느꼈고, 사실은 관심도 없는 이들이 나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망상은 술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너무 늦었다 싶을 만큼 오래 술을 마셨다. 이제는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는 게 술이라는 말처럼, 나는 술을 그만 마셔도 될 것 같다. 더 마시면 얼굴이 썩어 들어가는 걸 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맑아 보였다. 나는 썩어갔다. 그래서 하루를 참았다. 다시 얼굴을 봤다. 아주 작은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피부톤이 미세하게나마 좋아진 것 같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길 바랐다. 술 마시는 걸 들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숨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래서 더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다이어트도 3일이면 힘든데, 술을 끊는 건 더 어렵다고 들었고, 나도 예외일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크게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
그냥 이렇게 살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세상을 떠난 상범이 형처럼, 알코올 중독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술을 찬미하는 사람들 중에 술에 절어 사는 이는 없다.
좋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술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매일 술을 마신다면, 그건 분명 삶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삶에 문제가 생겼다고 왜 술을 마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술이 현실 회피와 타협이라는 비겁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술기운을 빌린다는 건 자신감이 없다는 뜻인데, 모든 일상을 술과 함께하지 않을 거라면 이는 불가능한 접근법이다.
물론 예외적인 사람들도 있다. 매일 술을 마시면서도 성공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에겐 술이 성공의 대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미리 경고하고 싶은 건,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하고 돈을 버는 건 좋지만,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약하다는 점이다.
뇌와 장기는 우리에게 수많은 경고와 신호를 보낸다.
술을 마시면 잠들지 못하고, 이는 만성 피로를 부른다. 이게 장기화되면 전두엽에 이상이 생기고 장기가 손상된다는 건 당연한 결과다.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 취하는데 정상적일 거라 생각하는 게 우습다.
무엇보다 생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원하는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생각 없이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은데, 마셔야 할 이유는 보잘것없다.
내 인생에 독주는 없다.
치사하게 술 안 마신 척하거나 한 잔 홀짝이며 낭만을 찾느니, 차라리 맨 정신으로 달리고 와서 샤워를 하겠다.
술을 끊은 지 4주째다. 가장 큰 변화는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이 느낌을 글로 남기고 있다. 술을 마시면 이 벌레는 잠시 사라진다.
지금 내가 벌레가 되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되지만, 이게 옳은 방향이라고 믿는다.
..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