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담배를 손에 쥔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우리 반에는 마음씨는 착하지만 수업 시간에 자주 빠지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 친구가 나를 보며 "너는 이런거 배우지 마라"라고 말할 때마다, 오히려 호기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그래서 냉큼 "나도 한 대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첫 번째 담배를 피웠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연기와 손에 배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입에 남는 더러운 느낌은 마치 내 몸에 독약을 뿌리는 것 같았다. 담배가 맛있다고 느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일탈이었기에, 이 행동은 나의 도파민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 일은 오래가지 않아 아버지에게 적발되었다. 정말 죽지 않을 만큼 혼났지만, 마침 나의 사춘기는 그 혼남을 반항의 이유로 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흡연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사실 담배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담배는 아니었다. 좋아할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유일한 나의 단점이었던 '친구가 하면 나도 같이 해야 한다'는 그런 본능적인 행태로 시작된 것이었다.
담배는 어떠한 이유로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성인이 되면서부터 더욱 확고해졌다. 사람들은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건강을 악화시키는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딱히 건강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관계를 유지할 때 담배는 방해가 되는 요소였다. 담배는 학창시절부터 이어온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만 가끔 하던 일탈행위가 성인까지 이어진 것일 뿐이었다.
문제는 내가 사람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끝맺거나 이어가지 못한다는 성격 탓에, 그리고 다양한 삶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여기에 명분을 넣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첫사랑에 상처받고, 이력서에서 탈락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때마다 담배를 찾아야 한다는 어떤 본능적인 행동 때문에 결국 니코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담배였다. 왜인지 두 개의 목적이 통일된 느낌을 받았다. 취해야 하고, 그 어지러운 상태를 촉매시키는 것으로 이용하기에 적절한 기호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당시의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할 명분을 다 잊게 되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고, 이 시대에 걸맞게 전자담배라는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흡연자들에게는 여전히 특유의 냄새가 났다. 전자담배여도 묘한 썩은 보리차 냄새는 본인만 모를 뿐, 인사만 해도 서로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흡연자들을 돕기 위한 세상의 변화였고, 나 역시 그것을 크게 거리켜 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특별한 이유로 담배를 안 피웠을 때였다. 당시 정신과 신체의 컨디션이 지나치게 좋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불면증이 없었고, 아침이 개운했으며, 머리가 맑았다. 즉, 그동안 그렇지 않았던 이유가 담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첫날은 마음이 조급했고, 가끔 식은땀이 났으며,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틀째가 되고 나면, 그 담배를 피우러 가는 시간 동안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몰라 입안에 먹을 것을 욱여넣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과 한 달을 지나고 나면, 자극적인 음식과 간식들로 얼굴이 늘 퉁퉁 부어있었다. 건강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을 겪게 되는 아이러니함이었다.
무엇보다 담배를 피우면 어떤 행동을 해도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서 휴식을 해도, 업무를 봐도, 사람을 만나도 반드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과거와 달리 마주 보면서 담배를 피울 수 없기에, 이동하는 시간, 행동하는 시간, 쉬는 시간이라는 명목 아래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쉬는 시간에 쉬지 못한 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건강을 챙기고, 마음을 다져야 될 시간에 끊임없이 생각을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상식적인 일들이 어느 순간 나에게 몰아쳐서 올 때가 있었다. 그것을 금단현상이라고도 부르지만, 거짓말처럼 내가 그게 없으면 미칠 것 같은 심리적인 공포가 몰아붙일 때가 왔다. 그런데 이번 한 번 피운다고 다음에 다시 못 끊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그냥 한 번 피우고 말았다. 그 뒤로도 생각은 났지만 그냥 피우지 않았고, 소위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간헐적 흡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내 의지로 흡연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 점점 니코틴에 몸이 잠식됨을 느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 담배를 무는 일이 많아졌다는 뜻인데, 왜 이런 일이 더 생기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어느 기점에 와서는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연일기라는 것도 써보라고 하고, 콜드터키가 어떻고 하는데, 이건 도대체 왜 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는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흡연 행동이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내 건강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시간이 나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있다면, 그리고 건강을 소비해야 한다면 흡연을 지속해도 되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닌 걸 아는데도 왜 신체와 정신과 시간을 소비해야 되는지 더 이상 명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계속 피우지 않겠다고 하니까 무턱대고 겁이 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유발하는 환경들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야겠지만, 그것도 답은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친구가 있어도, 난 더 이상 담배가 필요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안티프래질한 것은 어떤 노이즈에도 강인해져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필요 없는 건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릿속에서 가끔 생각이 나지만, 결국 나는 내 흡연 도구들을 서랍 속에 넣었다. 다시 꺼낼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서랍을 닫으면서 느낀 건,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다. 20년 넘게 나와 함께했던 것을 보내주는 일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작별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고마웠다고 말하며 돌아서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담배를 피우러 나가던 그 시간에 다른 것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거나, 깊게 숨을 쉬거나,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짜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담배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의존이 무엇인지,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이제 그 모든 수업을 마치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