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과 사별하다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정주고 내가 우네>

이빨과 사별하다


오늘, 당장 썩은 이 하나를 뽑았다.
중간쯤 썩어가는 것도 다음에 갈아야

하고,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또

뽑아야 한단다. 웬만하면 뽑지 않으려

했고,웬만하면 썩어가는 것들도 땜빵

없이 놔두려 했건만, 정이 들어 내가

먼저 울고 말았다.


한평생 함께한 정(情)을 생각하며 가능

하면 같이 살아보자 다짐했건만, 간호사

의 설명을 들으니 어금니가 일부 썩어

있었고,빼는 과정에서 결국 부러졌단다.


아, 이건 더 이상 내 인연이 아니구나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별을 선택했다.

]비싼 돈 주며 같이 살 수도 없는 운명.

이 사별 (死別)의 심정은, 한때 내가 이빨

관리를 소홀히 했던 식습관과 게으름에서

비롯 되었음을 알기에 나는 피 흘리며

묵묵히 아픔을 견뎠다.


헌데 이놈의 이빨은 뽑히기 전까지 돈

덩어리였다. 임플란트 하나에 120만원.

상담에 85만 원으로 시작했지만, 위아래

발치, 갈아내기, 땜빵하기 등등 들어간

비용이 토털로 700만 원쯤, 거뜬히 떡

싸 먹었다.


1주일, 6개월… 그렇게 출입하다 보니

방구석에서 가만히, 때론 누워 지내는

날도 많았다. 예전엔 세면장에서 칫솔

질도 팍팍, 손에 힘을 꽉 주고 쓱쓱 닦았

는데,요즘은 아주 조심스럽다.


비싸게 산 이빨이니 살살, 주야장천

정성껏,한 올 한 올 닦는다. 죽는 날까지

는 소중히 보살피며 살아야겠다. 문득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내 평생 무

한 번 와작 와작 씹어 보는 게 소원이다.


90 넘은 아버님을 치과에 모시고 갔을

때,의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90이

넘으면 잇몸이 없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그때 그냥 돌아서야 했던

기억."이 좋을 때 잘 먹어라.이 좋은게

오복(五福) 중 하나다.”

아버님의 말씀이 뼈처럼 남아 있다.


지금 내 모습은 아래위 입술이 덩달아

마취 되어, 손자와 입맞춤도 못할 정도로

삐뚤어 졌다. 그래도 오늘도 치과에서

의사 선생이 외친다. “아~ 해보세요!”

그 소리에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이빨 하나 뽑고 나면 지붕 위로 던지며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외치던 그때.

어린 마음이 소환되어, 기묘한 자세로

침대에 드러누워 괜찮은 척, 멀쩡한 척

나 자신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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