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휴대폰으로 부고장을 받고 보니
저는 올해 일흔여섯입니다. 결코 자랑
은 아닙니다.그런데 왜 이 말을 서두에
꺼내느냐 하면 어제, 장례식장 xxx호실
로부터 부고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
"발인: xx일 오전 xx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이제는 일흔,여든,아흔
을 넘긴 분들의 부고를 받으면 ‘아, 그
어르신…’ 하며 마음속으로 작별을
속삭입니다.
삶의 마지막 이정표 앞에서 ‘그래, 잘
살다 가셨구나’ 하고,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그날도 장례식장에 앉아,
음식 앞에 둘러앉아“다음은 우리 차례
지요.” 하고 농담 섞인 위로를 주고받습
니다.
그렇게 슬픔을 정겹게 나누는 법도,
우리 세대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칠십도 채 되지 않은 이의 부고
를 받았을 땐,말없이 눈가가 젖습니다.
가슴속으로 눈물이 흐르고,며칠이고
마음이 가라앉질 않습니다.죽기 전, 그
후배의 말과 표정, 마지막 행동이 자꾸
떠올라서, 하루의 일상도 무거워집니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부재보다도 더
가슴이 저미고, 숨이 막히는 듯합니다.
그 사람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
쌓아두기만 했던 정(情)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그 후배는,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랬듯
가난 속에서 배움을 이어갔습니다.중학
교, 고등학교 야간 졸업. 대학, 대학원,
외국어 자격증까지 갖춘 문학박사.
남몰래 치열하게 공부하고, 마침내
대학 교수가 되어
이제야 어깨 펴며 살 수 있겠다 싶던
찰나에,그의 부고장이 도착했습니다.
고작 예순 초반이었습니다.60~80년대,
우리 모두는 어려웠습니다.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
왔습니다.
그 지난한 시간 끝에 겨우 교수라 불릴
수 있게 된 그 사람 이제는, ‘그 이름’도 ‘
그 직함’도 아무 의미 없습니다.오늘,
나는 그를 위해 눈을 감고 묵상합니다.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죽음 앞에 우리는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가
.
아내도, 자식도, 손주도 두고,결국은
빈손으로 가는 길. 하늘나라.생전에
그는, 가을만 되면 이런 글을 써내려
가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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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글>
단풍나무
/망자 글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듯
허물을 벗어 놓겠다는 듯
진안 마이산 탑사의
경내에 들어와 서 있는 단풍나무
바람 지나간 뒤
제 가지 흔들어 잎을 지워버린다.
세상에서 빌린 옷 한 벌
그간 잘 입었다는 듯
먼 하늘에 절을 하며
아무 미련 없이
땅바닥에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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