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95세 아버지와 71세 아들인 나 사이
대화는, 때때로 시간이 빚어낸 틈을
조심스럽게 건너는 다리 같다.
그 다리 위에서 나는 아버지의 오래된
인생사를 하나 꺼내어 적어본다.
내 애마는 20년이 넘은 갤로퍼다. 시골
일을 위해 쓰는 낡은 짐차로, 사람은
2사람 밖에 탈 수 없고, 나머지 자리는
온통 삽, 괭이, 바구니 뿐이다.
주로 논두렁, 밭고랑, 자갈길을 달리고
장날이면 시장 길목을 오간다.
그날도 아버지와 함께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시속 50킬로, 집까지는 30분쯤
남은 거리.
아버지가 느닷없이 입을 여셨다.
“아비야… 서울에, 그… 거시기…
그 할마시, 아직 살아 있을까?”
“글쎄요, 아마 돌아가셨겠죠.”
“그지… 죽었겠지….”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후- 내뿜으시며
돋보기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셨다.
낡은 차 안은 어느새 묵직한 담배 연기
로 자욱해졌다.
나는 차창을 열 수 없었다. 찬바람을
들이마시면 천식이 재발할까 봐. 입을
꾹 다문 채, 아버지의 넋두리를 듣고
있었다.
맏아들의 눈치를 힐끔 보시며 툭툭 던지
는 그 말들.처음엔 당황했지만, 어느새
초등학교 .고등공민학교 시절로 타임
머신을 타듯 되돌아 가고 있었다.
60여년 전 나는 아버지에게 맞지 않으
려면 가출하는 수밖에 없던 아이였다.
왜 그토록 맏아들을 미워하셨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난다.
올해 91세가 된 어머니. 아버지와 해로
하신 세월만도 71년이다. 그 시절, 어느
집이든 작은 마누라 하나쯤 더거느리고
사는 풍경이 드물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일본에서 자라 한국에 들어
오신 후, 끝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여러 여인들과
약40년을 지내셨다. 가족의 삶은 피페
하게 기울었고, 어머니는 늘 그 여인들
을 모른 척하며 살아오셨다
나는 그 사실을 어머니가 나의 공책
에서 찢어 건넨 심부럼 쪽지 내용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끔 내
공책 한 장을 찢어 편지를 써,아버지
에게 하고싶은 말씀을 눈물나게 적어
쪽지을 만들어 심부름을 시키셨다.
“여보, 오늘도 집에 안 들어오시나요?
큰애 편에 쌀도 떨어지고, 땔감도
없습니다. 여보, 보고 싶어요…”
나는 그 쪽지를 몰래 읽곤 했다. 어떤
날은 걷고 또 뛰며 40리 길을 지나
아버지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인과 깔깔 웃으며 나오는 아버지를
본 적도 있다.
그 장면은 내 어린 뇌리에 선명히
박혔다.그리고 어머니에겐 꼭 입 다문
채 별을 보며, 달을 보며 훌쩍 이며
자랐다. 그 시절, 어머니는 늘 가슴
엔 돌덩이 하나가 박혀 있다고 했다.
그 고통이 지금의 협심증, 화병으로
이어진 건 아닐까.나는 지금 두 분을
모시고 살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아버지를 미워하게 된다.
조금만 더 어머니를 생각해 주셨더라면,
그 병 하나는 피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지금도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신다. 오로지 얼마 남지 않은 생애
속에서, 가슴속에 묻어둔 그 여인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말만 되뇌실
뿐이다.
만약 이 사실을 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아마 졸도하시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민에 빠진다.
아버지를 따라야 할까, 어머니를 지켜야
할까? 아버지를 따라 그 여인과의
마지막 상봉을 허락한다면, 그것은 불효
일까?
어머니를 위해 거짓을 지키는 것이
효도 일까? 살아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 여인을 찾아, 따뜻한 온천이 나오는
호텔 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하든 누군가는
눈물짓게 될 것이다.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은 없다. 부모 은혜는 하늘과 같다
고 했다.
"불효 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
는 후회한다 옛말이 가슴에 맺힌다.
이 이야기를 수필로 적어, 인생 선후배
님들께 던져본다. <그 여인의 안부>
이 화두를 함께..... 지금 시대는 어림도
없지만 저는 지나온 세월을 가슴에 묻고
이렇게 끌적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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