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노을울음-하태수-삶의조각

마음의 산책:수필집

by 하태수 시 수필


2025년도 13회 응모작

수필:노을울음-하태수-삶의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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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목차

--1부 웃음 속의 진담

1화):정론직필과 마음의 붓끝에서

2화):당신 하고는 코드가 안 맞아

3화):찌찌값 청구서

4화):안다이 똥파리

5화):마운틴 오르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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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눈물과 뿌리

6화):울 엄마의 단식투쟁

7화):아버지께서 보따리 달랑 메고 대문을 나선다
8화):사바골과 실천하는 효의 사상
9화):가짜 아버지의 부성애
10화):30억보다 귀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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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몸으로 쓴 수필

11화):아기 울음 대신 들리는 소리

12화):아직까지 살아있다
13화):이빨과 사별하다
14화):눈 시린 상정
15화):마지막 정열, 나의 삶의 아포리아


--4부 삶의 화두

16화):나는 사랑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17화):과거 인성과 현재 인성, 사람됨의 품질
18화):고추밭에서 한 여인과 입맞춤
19화):지금껏 살아온 생(生)을 관조(觀照)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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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정론직필과 마음의 붓끝에서


저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삶 속에서 정론직필’과 ‘호호 탕탕’의 기운

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누군가의 글을 읽는다고 해서 속뜻을 단번에

꿰뚫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움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온 체험이 글 속에 스며 있다면, 읽는 이의 마음도 어느새 진실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저는 어떤 작가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정치적 명예를 누리기 위해서도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농부입니다..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자연의

섭리대로 살고 있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뱅이도 아닙니다.다만,

숨 쉬는 진실을 글 속에서 마주하고 싶을 뿐입니다. 누가 어떤 글을 쓰든,

저는 먼저 그 안에 살아 있는 진실이 있는지 를 살펴봅니다


꿈틀대는 문장, 삶의 숨결이 깃든 문장 그 속에서야 비로소 시문학 이든

인문학이든, 사상과 철학이 든, ‘살아 있는 진실’ 한 줄을 만날 수 있기

때문 입니다.저는 묻고 싶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금 누구와 함께

어떤 삶을 버티고 있는가?부모를 모시고, 자식과 손주들을 돌보며, 이웃

과 정을 나누고,그렇게 살다가 마침내 죽음이라 는 쉼표 앞 에 이르기

까지 그 긴 여정을 무엇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

덧붙임

두 개의 말이 전해주는 깊은 울림正論直筆 — 정론직필 바른 주장과 곧은

글쓰기.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는 태도. 언론이 지켜야

할 정신이자, 삶을 기록하는 이가 지녀야 할 덕목입니다.‘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浩浩蕩蕩 — 호호 탕탕 큰 물이 거세게 일어나 끝없이 흐르는 모습. 굳

세고 넓은 기개, 거침없이 흐르는 정신, 자연처럼, 바람처럼,대지처럼

자유로운 삶의 자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

요점.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괴테의 『파우스트』에는 이런 말이 나

옵니다.“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뱀은 스스로 껍질을 벗어야 성장

합니다.그러나 병들거나 상처를 입으면, 탈피 하지 못하고 껍질 안에

갇혀 죽습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탈피하지 못하면,고정관념과 낡은 습관, 타락한 태도에

갇혀 서서히 쇠퇴하게 됩니다. 그래서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벗고,

새롭게 나아가야 합니다.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문장을 벗고,

생각을 벗고, 더 깊은 자신으로 들어가야 참된 이 야기에 닿을 수 있습니다.

===

<결론 — 마음의 붓끝에서>

저는 지금도 ‘행복한 동행’을 꿈꿉니다 글을 쓰고 읽는 선후배들 과 함께,

삶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부끄럼 없이,속이지 않고, 그렇게 우리의 생

을 나누며 결국 죽음이라는 이정표 앞에 다다르기 까지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의 숨결을 함께 호흡하고 싶습니다


짧은 "詩" 한 줄에라도 마음을 실어,정(情) 하나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이 삶의 소중한 의미일 것입니다.그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마음의 붓끝에서, 거짓 없이 살아온 날들 을 꾹꾹 눌러 써

내려갑니다.

=====

2)화

당신 하고는 코드가 안 맞아


‘코드(chord)’는 우리말로 ‘화음(和音)’이라 한다. 화(和), 곧 조화로울

화. 음(音),곧 소리. 즉, 코드란 높낮이 가 다른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

에 울려 만들어내는 조화 의 울림이다.


‘도’ 하나만으로는 그저 소리일 뿐이다.그러나 미, 솔이 덧붙여질 때,

비로소 하나 의 세계가 열리듯 코드가 된다. 도-미-솔, 혹은 도-솔-미.

때론 도-미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울려 나오는 음의 흐름, 그 소리는 우리 삶의

결이자, 마음의 떨림으로도 이어진다. 나이 들어 살아가다 보면, 사람

사이에서도 문득 ‘코드’라는 말 을 떠올릴 때가 많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 이 사람 과는 코드가 맞는 것 같아.”

하고 느끼는 순간. 말이 통하고, 생각이 겹치며, 묘하게 웃음의 타이밍

까지 닮았을 때, 그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울리는 조화로운 화음이다.


요즘 나는 온라인 글방에서 이런저런 글을 올리며 살아간다. 시에 대한

단상, 수필에 대한 감상. 댓글 하나에도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다. 짧은

문장 속에서도 센스 있게 위트를 건네는 사람, 남의 글에 따뜻하게

공감하고 정성껏 반응하는 이들을 만날 때면 가까이 있다면 와락 끌어

안고 “이뻐 죽겠네!”하고 외치고 싶다.


어쩌면 그런 글 너머로 ‘짝지’를 만난 듯한 설렘이 일기도 한다. 이 사람

이라면, 정말 코드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 반대로,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도 있다.


자기 체험을 말하라 했더니, 엉뚱한 방향 으로 혼자 떠들거나, 남의 글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자기 글처럼 내놓는 경우. 그럴 땐 솔직히 머리통을

살짝 쥐어박고 싶은 충동 도 든다.


내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 흐름에 맞춰 야 할 텐데. 그저 자기 박자

대로 북을 두드리는 사람들. 그건 코드가 아니라 ‘잡음’이다. 늙어서도

사람 사이엔 코드가 필요 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신적으로 코드가 딱 맞으면 말이 필요 없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오가고, 미소가 흐른다. 가령, 아내 가 속으로

‘오늘 밤 영감이 또 꿍꿍이를 생각하나 보다’ 싶으면 슬며시 흰 타월

을 개켜드는 손길도, 그건 오래된 악보 위에 조용히 올려지는 예의

와 배려의 음표다.


그것이 바로 둘 사이의 조화로운 화음이다.하지만 반대로, 남편이

밤새 이웃집을 돌며 화투판을 전전하고, 씻지도 않고 누워버리 는

아침. 그때 아내의 마음은 “아, 이건 코드가 영 안 맞는다.”로

기울고 만다.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일은 어디선가 먼저 물을 끓이고, 어디 선가

조용히 문을 닫는 마음의 연습이다. 그 작은 배려의 음 하나 가

없을 때, 조화는 쉽게 깨진다. 나는 앞으로도 코드가 맞는 사람들

과 어울 리고 싶다.


노래방에서 다음 곡을 슬쩍 찾아주는 에티켓, 뚱뚱하고 못생 겼

더라도 자기 관리를 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나이 들수록 육체는 멀어지지만, 정신의 손뼉은 더 자주 마주쳐야

한다. 약봉지를 뜯으며 “물 좀 줄래요?” 할 때,“손발이 없나? 지가

가져다 먹지!”라는 말이 돌아 온다면 그건 단호하게 ‘불협’이다.


같이 살다가 언젠가 어느 한쪽이 먼저 떠나게 될 그날까지, 서로

의 삶을 조율하고,맞춰가고, 조용히 배려하는 그 마음의 코드 가

도-미-솔처럼 울려 퍼지기를.


그 화음이 삶의 끝자락까지 이어지기를. 나는 바란다. 그 울림이

조용하고도 아름답게, 우리의 삶 속에 머물기를.

=====


3)화

찌찌값 청구서


그해 봄, 날씨도 좋고 보리도 쑥쑥 올라 오던 철이었습니다. 마누

라가 밭에 다녀온다고 시내 장에 따라나섰다가,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자꾸만 멀어지는 겁니다


“야, 늙은 것아, 왜 이렇게 늦게 따라오니?”하니까, 마누라가 숨을

몰아쉬면서 한 마디 하대요. “속이 답답하고 숨이 차서 빨리 못

걷겠어요…”

얼굴을 빤히 쳐다봤더니, 글쎄, 색이 누렇다 못해 꼭 병아리 간장

찍어놓은 것처럼 노란 거 있죠. 농사꾼 눈에는 풀떼기든 사람 얼

굴이든, 이상하면 바로 티가 납니다


‘이거 속이 단단히 상했구나’ 싶어서 시내 병원으로 데리고 갔지요.

젊은 내과 과장이 라는 양반이 뭐 라카냐면,“역류성 식도염 이니

약 한 달치 먹이면 됩니다” 하더이다


그래서 약을 꼬박꼬박 먹였지요. 근데 이게 웬걸요. 낫기는커녕

며칠 뒤엔 밭두렁에 쭈그려 앉아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겁니다


“이 노인네, 이러다가 진짜 퍼지는 거 아냐 ?”그때부터 가슴이

콕콕 쑤셔왔습니다. 마누라는 또 멀쩡한 척 농사일을 계속하길래 ‘

그냥 또 아픈 척 하나 보다’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내가 참,

남편 노릇 헛한 거죠.


몇 날 며칠 지나서 또 같이 시내 나갔는데, 걸음걸이마저 위태

위태하더이다. 이번엔 연륜 있어 보이는 60대 초반 의사 선생을

찾아갔더니, 이 양반 말이 또 다릅니다


“제가 보기엔 식도염 아니에요. 심장이 제 같네요. 얼른 큰 병원

가보세요.”서울 가기 전, 원주에 있는 XXX병원으로 급히 갔더니만,

거기서 아주머니 (그러니까 마누라)를 조형술실로 들여보내고 난

후, 의사들이 줄줄이 나와서 말하대요.


“여기 보이시죠? 심장 핏줄 세 가닥이 막혔습니다. 하나는 터졌어

요. 지금 당장 수술 안 하면 위험합니다.”

근데 문제는, 거기 그 당장 할 의사가 없다 입니다. 그러니 또 서

울로, XXX병원으로 앰뷸런스 타고 날아가야 했지요. 사이렌 울릴

때마다, 귀에 들리던 건 그 소리보다도 내 가슴속에서 쏟아지던

소리 없는 통곡이 었어요.


그 와중에도 생각은 듭니다. ‘에이, 논밭 좀 팔면 되지. 뭐 사람

살고 봐야지…’

그렇게 서울로 옮기고, 장장 8시간 동안 개복 수술을 했지요.

마누라의 왼쪽 다리 에서 지렁이처럼 생긴 핏줄을 잘라 심장

에 붙였다 카더라고요. 수술 끝나고 숨을 쉬는 걸 보니까 살았구

나 싶었지요.


근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간병인 주야간 교대 두 명에,

병원비만 3천이 넘었어요. 보험도 잘 안 되어 있던 차에, 아휴,

우리 농사꾼한테 그 돈은요, 지게 두개 짊어진 셈이지요.

그래서 아이들 왔길래 말했죠. 마침 종이 커피잔 들고 있던 김에

한 마디 했습니다.“야, 이놈들아. 니들 어릴 때 니들 엄마가 젖

먹여 키웠지?


지금이 그 ‘찌찌값’ 좀 갚을 때 아니냐?”했더니, 옆에 있던 마누라

가 말도 없이 내 옆구리랑 궁둥이를 잡아 비틀더니, 멍이 시퍼렇

게 들게 만들 더라고요. 그 멍자국 은 며칠이 가도 안 빠지더이다.


결국 ‘찌찌값’은 못 받고, 마누라 손톱자국과 시퍼런 멍만 얻었

지요. 아이들은 서울살이 힘들다며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고,나는

그저 속만 뒤집혀서 시골 땅 몇 마지기 팔아 치료비 메꿨습니다.


그래도… 마누라는 살았습니다.지금도 밭에 나가면, 그날 들었던

사이렌 소리가 귀에 아른 하고, 서울 병원 창밖에서 흘렸던 그

눈물이 논에서 흐르는 물 처럼 머릿속에서 흐릅니다.


“찌찌값”은 못 받았지만, 그날 마누라 살펴낸 덕분에, 나는 지금

도 밭에서 일하고,마누라는 집에서 김치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요… 돈은 빠져나가고 멍은 들어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

살렸다는 게 인생 최대의 이문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쟁기 들고, 괭이 메고, 내 삶의 밭두렁 길을 다시 한번 활력 있게

걸어갑니다

=====

4)화

안다이 똥파리


이제 65세 이상이면 ‘노인’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기초노령연금

대상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인정, 공원 벤치, 종교단체 모임,

음식 무료 배식소 등 어디를 가든 남자 노인들이 모여 앉아 수다

를 떨기 시작하면, 금세 알 수 있다.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를 무렵이면, 누가 먼저 알릴 것도 없이

삶의 체험담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중에는 사실 여부를 검증

하기 어려운 직업관, 국가관, 가치관이 섞여 있다.


누군가 맞장구라도 잘 쳐주는 날이면, 주인공은 단번에 그 노인이

된다. 자랑이 자랑을 불러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과거를

화려하게 펼쳐놓는다.


특히 말 많은 어르신들은 부산 갔다가 강원도 갔다가, 누가 일본

이야기를 꺼내면 갑자기 일본 갔다가, 미국 갔다가, 또 사우디

얘기 나오면 어느새 사우디 출신 으로 변신한다.


TV 드라마 얘기가 나오면 시인, 수필가,칼럼니스트, 소설가가

되어 있다. 사업 얘기로 넘어가면 더욱 가관이다. “왕년에 수백억

날려봤다”는 실패담은 듣고 있자면 가슴이 서글 퍼지기보다,

오히려 실소가 절로 나온다

.

경상도 사투리 중엔 “안다이 똥파리”란말이 있다. 무엇이든 아는

척하며 아무데나 달려드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이 말 만큼

떠버리 노인들의 특징을 잘 설명 하는 말도 없다. 그러다 누군가

말 한마디 툭 던지면 금세 싸움이 벌어진다.


“너 몇 살이야?” 반말에 발끈한 상대가“주민 등록증 까자”며 고성

이 오가기도 한다. 또 술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소주 다섯 병 마

셔도 멀쩡하다”는 체질 자랑이 빠지지 않고, 춤 이야기가 나면 “

서울 바닥에 내 손 안 잡은 여자가 없다”라고 말하는 ‘전설의 제비

족’이 되어 있었다.


대학교수 이야기엔 “우리 형님이 xx대 교수였다”는 말이 덧붙고,

골프, 바둑,포커, 화투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처음 시작한 화제는

이미 실종되고 사라지고 없다.


어느새 “XXX 범법자 내용”이 언급되며 누군가 허리를 툭 치고

웃는다.“비아그라 먹어야 힘이 솟는다”며 정력 자랑으로 분위기

가 바뀐다. 사위 자랑,며느리 자식 자랑, 손자 손녀 자랑이 뒤섞여

대화는 실종되고, 나는 속으로‘이건 치매도 아닌데 어찌 이리 횡설

수설 인가’ 싶다.


그쯤 되면 집에서 전화가 온다.“저녁 안 먹고 뭐 하셔요?”
나는 핑계를 댄다.“실례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울게요.


귓구멍이 간지러워 더는 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한 귀로 듣

고 한 귀로 흘려보내야 말들이 참 많다.

은퇴 전에는 의미 중심의 시간, 카이로스 (Kairos)를 살았던 사람

들이, 은퇴 후에는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Chronos)의

삶을 산다.


어쩌면 지금 이들의 허세 어린 수다도 사회적 공허함과 외로움

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진정성이 없는

말은, 결국 상대에게 신뢰 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할머니들의 수다는 어떨까.그분들도 아마 비슷하게 말꼬리를 물며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고 계시겠지. 이제는 우리 모두 늙었다.

보잘것없는 넋두리라 해도, 진실만은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허풍도 허세도 떨지 말고, 살아온 그대로—보태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정직한 인생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화려한 학력도,번쩍

이던 과거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병원 신세 지지 않고, 신체 건강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상대

를 다독이며,발언권 무시하고 말끊고 끼여들지말고 따뜻한 덕담

한마디 미소을 건네며,길가 마주 앉아 좌판기 커피 한 잔에 삶을

나누는 일~ 그런 평범한 하루가 어쩌면 가장 품격 있는 노년이

아닐까.오늘도 조용히 되뇌어 본다.

=====

5화)

마운틴 오르가즘(Mountain Orgasm)


산에 오르다 보면 꼭대기쯤 도달했을 때 누구랄 것도 없이 “야호~!”

하고 외치게 된다.그 순간 머릿속이 개운하게 맑아지고,찌뿌듯하던

몸도 슬슬 풀리는 것 같다.


팔, 다리, 목.온몸 구석구석에서 ‘쏴아~’ 하고 시원한 기운이 퍼지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마운틴 오르가즘이다.무슨 야한 소리가 아니라,

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쓰이는 말이다.


오르가즘이 꼭 침대 위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산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

머리에서 발끝까지 퍼지는 희열.그 기분은 아마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건 별것 아닌 듯 보여도 사실은 삶의 큰 낙이다.


하루하루가 그저 생물학적인 연명에 가까운 몸살 환자, 장애자의 인생

살이 속에서 이 산행이란 게 그나마 기적 같은 활력소가 되어 준다.

그러니 ‘마운틴 오르가즘’이라 이름 붙였다고 해서 혀를 끌끌 찰 일은

아니다.


요즘 내 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머리도, 팔도, 다리도 각자 제멋대로다.

서로 말도 안 통하고,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그 와중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며 정신적 쾌감을 찾아보지만,솔직히 말해 그건 시원하게

터지는 맛이 좀 부족하다.


뭔가 늘 꾹 막힌 느낌이랄까.그래서 결심했다.몸이 이래도,산으로 가자.

러브 오르가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산행의 쾌감,마운틴 오르가즘 정도는

느껴보자고.숲속의 맑은 공기,졸졸 흐르는 물소리,따끈한 바위에서

올라오는 원적외선과 음이온.이런 자연의 품에 안겨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나 같은 할배에게도 어느 정도 정(情)이 다시 살아날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는 ‘병신 꼴값’이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매일 아침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선다.두루미걸음, 가재걸음,궁둥이 따로, 팔

다리 따로 노는 몸뚱이지만 그래도 한 걸음, 또 한 걸음.가까운 산책

길부터 시작해 서서히 거리를 늘려 간다.


남들 눈에는 한심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지금 마운틴 오르가즘을

향한 정열적인 등정 중이다.지팡이에 몸을 맡기고헉헉대며 한 걸음

씩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그 정상에서 다시 한 번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야호~!나 아직 살아 있소!” 하고.이 나이에 이런 기분,이런 땀방울

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어쩌면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생생한 순간은 산을 오르며 흘리는 이 땀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나만의, 늦깎이 인생이 주는 마운틴 오르가즘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


6)화

울 엄마의 단식투쟁


얼마 전, 아버님(95세)이 XX군청에 가신다고 하셨다. 말씀을 들어

보니 돈과 관련된 일인 듯했다. 이쯤 되면 큰 아들 노릇을 해야

할 때. 나는 아침 일찍 차에 아버님을 모시고 군청으로 향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70여 년 전, 아버님은 일본에 징용되어 2차 대전에 참전하셨고,

그 당시 싱가 포르며 말레이시아까지 전장을 누비며 살아오셨다.

그에 대한 국가적 보상 으로, 생존자에 한해 소정의 금액을 지급

한다는 통보였다.

2014년 기준 생존자 지원금 80만 원에,미지급분 60만 원까지

총 140만 원.아버님은 꼿꼿한 자세로 서류를 내셨고,나는 그 돈

을 받아 아버님께 전해 드렸다.

점심을 대접하겠노라 말씀드리니,아버님은 도리어 큰소리치셨다.

"오늘은 내가 쏜다! 아애미하고 아애비하고 따라오너라!" 근처

불고기집에서 아버님은 생전 처음 보는 포스를 내뿜으셨다


"너희 둘이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라.고기 먹어라!" 그리고는 은행

봉투 두 개를 꺼내셨다 한 봉투는 아내에게, 다른 하나는 내게.

아내에게는 거금 10만 원, 나에게는 무려 50만 원을 주시며,

"생활에 보태 쓰거라!" 하신다. 나는 울컥했다.


오랫동안 부모님 모시고 살아오면서, 아버님 께받은 돈이란 말

한마디조차 없었는데...봄에 집을 나가시면 가을에 오시고, 가을

에 나가시면 봄에 오시던 분.나는 그게 대한민국 아버지의 일상

이려니 하고 살아왔다.하지만, 나는 그 돈을 다 받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 마음만 받을게요."50만 원 중 30만 원은 도로 드렸고,

20만 원만 억지로 받았다.아버님은 결국 110만 원을 챙기시고,

어깨 펴고 귀가하셨다.그런데 다음 날, 사무실로 아버님이 찾아

오셨다.


"아비야, 너희 엄마가 다 죽어간다."
"예? 왜요?"


"나도 어제부터 밥을 못 먹고 굶었고, 너희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있다!"아버님은 똥색 얼굴로 안절부절.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고, 이거 돈 때문에 울 엄마가 단식투쟁에 들어가셨구나!"


역사적 인물 중 단식투쟁 하면 간디가 떠오른다. 그분은 평생

145일 단식을 하셨고, 모세는 80세에도 40일 금식 하며 민족을

구했다.부처님도 해탈의 고행 중 단식을 하셨 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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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늦게 피는 꽃일수록 향이 깊듯, 삶의 시간을 글로 피워냅니다. 경주에서 태어나 단양과 서울을 오가며 시와 수필을 쓰고, 한 줄 문장에 세월의 결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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