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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Sep 19. 2017

나라고 두려운 게 없겠어?

장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다. 손님이 있으면 있어서, 손님이 없으면 없어서. 내 입장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우리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에게서 보람을 느끼고, 일 바깥 삶의 패턴을 깨지 않기 위해 쉬는 날을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거의 매 순간 이대로 괜찮은 건지 두렵다.  


"이번 달 카드값이 장난이 아니네."

"방법은 있어?"

"아니..."


장사를 시작하고 이 년이 지났지만, 종일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느라 동동 대지만, 엄마와 나는 아직도 매달 카드값과 공과금을 걱정한다. 이렇게 저렇게 카드값과 공과금을 해결하고 난다 해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우리가 버는 돈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리는 걸까? 언제쯤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장사해서 남는 게 가능할까?


카드값과 공과금은 월말에 내는데도 중순만 되면 두려워진다. 그렇게 한 번 두려움을 느끼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위협한다. 육십 넘은 엄마가 저렇게 무리해서 일해도 괜찮을까? 내가 결혼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 엄마 혼자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장사를 접으면 어떤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 보증금도 퇴직금도 없는데, 여기 계속 살아야만 하는 건가?


한 달을 기준으로 두려움 없이 하루를 넘기는 날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마냥 두려워할 수는 없다. 내가 두려워하면, 엄마는 물론 아빠와 동생네 식구 모두 크게 동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자, 침착하게, 나의 두려움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자.


"주말에 가까운데라도 다녀올까?"

"뭐가 걱정이야? 다 방법이 있어."

"이번 달만 넘기면 자리 잡겠지."

"어쨌거나 빚이 줄고 있잖아. 조금만 더 고생해."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가족에게 한다. 괜찮다. 괜찮다. 이번 달만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장사를 그만둘까,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렇게 돈 걱정하느니, 엄마랑 싸우느니, 다시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하며 집으로 생활비를 보내는 건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도 육십 넘은 엄마가 한번 해보겠다고 대차게 결심한 건데,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끝은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돈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엄마에게, 그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그냥 이대로 조금씩 나아지는 것. 무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떼돈을 벌기보다는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는 일자리를 엄마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거기에서 일의 보람과 삶의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고.


어떤 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치열함이 부족하다고, 죽어라 노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장사가 되겠냐고. 처음에는 그 말에 크게 동요했다. 일단 하기로 했으면, 잠도 안 자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몸을 풍덩 담가야 하는 건가? 난 왜 내 일이 따로 있다는 핑계로 발만 조금 담그고 있는 걸까?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 혼자 살아남으려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엄마에게 장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미래 없는 인생이라지만, 장사의 끝에 최악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고서는 이 모든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장사가 금전적으로 자립하지 못했는데, 따로 돈 벌 구멍마저 없으면 위급한 상황에선 답이 없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성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엄마의 성공을 위해 돕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의 두려움을 내가 조금 덜어 지는 것, 이것은 내 나름대로 내 가족을 지켜내는 치열한 방법이다.  


허허. 치열하지 못한 자의 자기합리화라 해도 할 수 없다. 사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음주면 월말이고, 나는 지난주부터 서서히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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