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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Oct 17. 2017

이별의 무게

"사장님, 여기 부동산인데요."

"예약하시게요?"

"아니요. 현장에 일하러 오신 분들이 식당을 소개해달라고 하셔서요."

"가게가 작아서 인원 수가 많으면 어려운데요."

"열다섯 분 정도예요. 좋으신 분들이고..."

"아... 얘기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유난히도 해가 쨍쨍하던 날. 바쁘게 점심 장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며 맥주를 한 잔 따랐다. 땀범벅이 된 엄마가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내려간 사이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밥 대 먹는 아저씨들을 소개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인원은 적당한 것 같은데, 점심 장사만으로 벅찬 우리가 아침과 저녁까지 해낼 수 있을까. 집에서 올라온 엄마와 상의하던 참이었다.


"밥 좀 주세요."

"부동산에서 이리로 가라고 하던데요."


보도 듣도 못한 아저씨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반짝이는 눈들, 무엇을 밟아도 끄떡없을 것 같은 안전화들이 가게 문턱을 넘어와 엄마와 나를 보고 섰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엄청 허기진 것 같은데.


"일단 앉으시고요. 원래는 예약젠데 오신 거니까, 된장찌개랑 저희가 먹으려고 해뒀던 추어탕 내드릴게요. 추어탕 드실 분?"

"반반씩 주세요. 알아서 먹을게요."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주세요. 막걸리 마시게 잔이나 우선 주세요."


아저씨들의 말씨가 곱다. 괜히 겁먹었나. 뭐가 무서웠던 걸까. 아빠 때문에 현장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아직도 나는 그들이 무서운가 보다. 많은 소문 때문에, 믿지 못할 소문을 믿어버렸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밥을 대 먹는 아저씨들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누구네 아저씨들은 장부 만들어 몇 달 동안 밥을 먹고 돈도 안 주고 가버렸다더라,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맨날 투덜거리고 깽판 놓더라, 찬과 국거리가 한정되어 있으니 나중에 가면 해줄 게 없어 손해를 보고 음식을 해주는 일이 생긴다더라... 밥을 대 먹는 아저씨들이 생기면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수입이 있어 좋을 것 같지만, 그에 따른 리스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아저씨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니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싶었다.


20석 남짓한 식당에 시커먼 아저씨들이 아침저녁으로 북적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침 준비 때문에 새벽 4시에 출근했고, 나는 5시 반에 눈곱만 겨우 떼고 출근했다. 아저씨들이 출근하고 나면, 바로 점심 장사 준비와 장사, 그러고는 바로 저녁을 준비해 아저씨들을 맞았다. 가게가 바빠 집에서 하던 일들은 손도 댈 수 없었다. 매일 애가 타고 또 탔다. 느긋하고 여유 있게 장사하며 오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었다.


내 일을 하지 못해 애가 탄 것만 빼면 다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결제를 해주니, 카드값이나 세금은 바로 해결할 수가 있었다. 얼결에 시작된 아저씨들과의 만남 또한 날이 갈수록 좋았다. 숙소에 가다 밤을 땄다며 밤을 가져오기도 하고, 회가 먹고 싶어 회를 떠 왔다며 한 팩을 먹으라며 주기도 하고, 바쁠 땐 수저며 잔이며 반찬이며 알아서 챙겨갔다. 어떤 메뉴를 내놓든, 냠냠 짭짭 맛있고 깨끗하게 드셨다. 그리고 잘 먹었다며 꼭 인사를 하고 출근하고, 퇴근했다.


"잘 먹었습니다."

"다녀오세요."

 (......)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시간이 흐르니 아저씨들의 식성도 보였다. 이름을 모르니 식성에 따라 별명도 지었다. 음식을 맵게 먹어서 '고추 아저씨', 아침에 제일 일찍 와서 '일찍 오는 아저씨', 라면을 자주 끓여달라고 해서 '라면 아저씨', 툭하면 추어탕을 달라고 해서 '추어탕 아저씨', 김치를 몇 번이나 리필해서 '김치 아저씨'. 아저씨들의 별명은 엄마와 나만의 암호다. 누가 뭘 더 달라고 했을 때, 빨리 전달하려면 암호가 필요하니까.


"음식은 여기 다 있으니까... 그래도 음료는 사 드실 것 같아서 사 왔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잘 마시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엄마보다 몇 년은 더 사셨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오늘은 기나 긴 3주 일정이 마무리되는 날. 쉬는 날도 없이 6시 반에 아침을 먹고, 5시에 저녁을 먹던 15명의 아저씨들이 작업을 마치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사장님 음식 먹고 싶어서 어쩐대요?"

"집에 온 것처럼 편해서 좋았습니다."

"다음에 이 동네에 오면 여기서 밥 먹을 거니까 또 밥 해주세요."

"힘드셨을 텐데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어제 저녁을 먹으며 인사를 하고, 오늘 아침을 먹으며 인사를 하고, 오늘 저녁을 먹으며 또 인사를 한다. 우리만큼 아저씨들도 아쉬운가 보다. 맨날 허옇게 질린 얼굴로 어버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식당 모녀가 걱정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거듭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저씨들 때문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렇게 아저씨들이 사라진 식당에 혼자 앉아 주류 차를 기다린다. 너무나도 고요한 식당. 아저씨들이 금방이라도 시커먼 얼굴에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밥을 달라고 할 것 같은데.


쌀쌀한 바람이 부는 오후에 식당으로 이별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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