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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Nov 04. 2017

엄마 찾아 삼만 리

아주 아주 어릴 때.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만화영화를 보며 자주 울었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 아이가 꼭 나인 것만 같아서,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 사는 나와 같은 마음일 것만 같아서 <엄마 찾아 삼만 리>를 보던 날이면 책상 밑에 들어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소리 죽여 울곤 했다.


"여보세요."

"오늘 저녁에 삼겹살이 먹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아... 엄마가 지금 안 계신대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주 아주 어릴 때.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만으로도 온 세상이 어둡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핸드폰을 두고 사라진 엄마를 찾으려고 눈이 시뻘개 동네를 뛰어다니는 나는.


"네, 중앙마틉니다."

"저 호호아줌마 딸인데요. 저희 엄마 거기 계신가요?"

"아까 전에 가셨는데요."


엄마는 사실, 자유인이다. 외출을 할 때 목적지를 밝히지 않는다. 나간다는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바람처럼. 그렇게 평생을 살아 왔다. 전화 따위로 날 감시할 수 있을 줄 아느냐. 매일매일 온몸으로 자신이 자유인임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좀 전까지 분명 거실에 누워 조카와 놀고 있었는데, 엄마는 핸드폰을 두고 어디에 간 걸까. 삼겹살을 찾는 손님이 오기 전까지 두어 시간. 나는 마치 셜록이라도 된 듯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일단 가게에 가보자.


"혹시 저희 엄마 못 보셨어요?"

"글쎄... 차도 안 보이네?"


옆 가게 아주머니도 본 적 없는 엄마의 행방을 찾아 하나로마트로 행한다. 우리 거래처는 중앙마트 아니면 하나로마트. 저녁에 시래기 고등어찜을 한다고 했는데. 고등어 사러 하나로마트에 갔을지도 몰라. 슬리퍼를 신고 헐레벌떡 하나로마트로 뛰어가다 길 건너 순대국밥집 앞에서 엄마 차를 발견했다. 순대국밥집 아주머니와 담소라도 나누고 있는 건가. 혼자 한가하게 노가리를 까는 건 아닌지 이글이글한 눈으로 순대국밥집 통유리 안을 살폈지만 엄마는 없다.


엄마는 쇼핑왕이니까 순대국밥집 옆 건물에 있는 옷가게에 갔을까?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았어. 쇼핑으로 풀 때가 됐어. 하지만 옷가게도 엄마는 없다. 그렇다면 순대국밥집 뒤편에, 엄마 절친이 운영하는 식당에 갔나. 똑똑똑! 몇 차례 문을 두들기다 인기척이 없어 불쑥 들어갔는데, 나를 맞이하는 건 술 병 몇 개뿐이다.


어허, 그런데 엄마 친구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계속 들린다. 환청이 아니라면 이 근처 어딘가에 계시다는 건데. 가게 맞은편 밭에서 뭔가 따고 계신 건가? 목을 길게 뽑아 밭을 샅샅이 살폈지만, 아줌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목소리는 계속 들리더라니. 소리의 출처는 식당 뒤 툇마루였다. 엄마를 보는 순간, 나는 약간의 짜증으로 눈이 살짝 돌았던 것 같다.


"여기서 뭐해?"

"왜? 손님 왔대?"

"안녕하세요."

"아이고!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저녁 먹는 아저씨들이 삼겹살 먹고 싶대."

"미안, 미안."

"으이그. 안녕히 계세요."

"가!"


엄마는 뭐가 그렇게 해맑아. 엄마를 잡아먹을 듯 소리를 쳐도 엄마 친구는 별 관심이 없다. 나도 엄마에게 소리 지를 건 지르고, 엄마 친구에게 인사할 건 하고 돌아선다. 엄마도 나에게 미안해하며 자신의 친구에게 인사도 없이 나를 따라 나온다. 우리 셋 다 쿨했어, 자연스러웠어!


"차 타고 가지?"

"집에 갈 거야. 아저씨한테 전화해봐."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덕에 소중한 휴식 시간을 15분이나 빼앗겼다. 지금 시각 3시 30분. 나의 휴식 시간은 4시까지. 급하게 집으로 달려가 소파에 누웠다. 나는 4시까지 쉬어야만 한다. 왜? 쉬는 데 이유가 필요하던가.


<엄마 찾아 삼만 리>를 보며 책상 밑에서 숨 죽여 울던 꼬마 아이는, 슬리퍼를 끌고 엄마를 외쳐 부르며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삼십 대 중반에 드센 아줌마가 되었다. 소파에 누워 조카의 장난을 보다 생각한다. 나의 어릴 적 낭만과 순정은 어디로 간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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