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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Nov 11. 2018

엄마가 해준 밥

문을 열고 한 발짝만 내딛어도 더워지고마는 여름.

내 또래의 스님이 식당 문 앞에서 목탁을 두들긴다. 에어컨 바람에게 실례라도 할까 봐 굳게 닫힌 유리문 뒤에서 목탁만 두들긴다. 엄마는 뙤약볕에 쓰러지면 큰일이라며 달려 나가 시주를 한다. 그래도 스님은 목탁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금액이 적어 그런가, 다른 용건이 있나. 할 일 없이 주방에 서서 의문 가득한 눈빛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스님이 유리문을 연다.

“저, 열무비빔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스님 신분으로 식당 앞을 기웃하며 메뉴판 보기가 뭐해서 목탁을 두들기셨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한껏 웃는 나는 얼른 답을 하지 못하고, 스님은 어정쩡하게 문 앞에 서 있는다. 이를 지켜보던 엄마가 자리를 안내한다.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테이블 앞에 선 스님이 승복을 벗어 의자에 걸어둔다. 해 뜬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승복은 땀에 절어 색이 진하다.

“밥과 반찬은 조금만 주셔도 됩니다.”

몸집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스님이다.


그릇에 반찬을 아주 조금씩 담고, 밥은 반공기만 푼다. 강된장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수저부터 들이대는 스님의 눈빛이 흔들린다. 밥 위에 강된장을 많이 넣는다. 느릿느릿 하던 동작은 간 데 없다.

“그럼 짠데요.”

“…”

“밥을 더 드릴게요.”

“그럼 아주 조금만 주…”


옥신각신하는 사이로 밥그릇 하나가 들어온다. 수줍음 많은 엄마는 어딜 가고 밥 한 공기가 스님 그릇에 담겼다.

 “아….”

스님이 웃는다. 난처한 기색은 아니다.

“맛있게 드세요.”


새벽밥 먹고 시주를 다녀 허기졌는지, 승복과 함께 스님 신분도 벗어두었는지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밥을 먹는다.


스님은 언제 마지막으로 엄마 밥을 먹었을까?

스님도 우울한 날은 뱃속까지 따뜻해지는 엄마 밥이 먹고 싶을까?

오늘이 그런 날일까?


“직접 담근 거니까 드세요.”

젖은 승복을 걸치는 스님에게 식혜를 내미는 엄마의 웃음이 다정하다.

“제가 식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좀 살 수 있을까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님의 목이 조금은 멘 듯하다. 엄마는 마치 스님의 엄마인양 물병에 식혜를 가득 담아 스님에게 내민다.

“시주도 많이 못했는데 이건 그냥 가져가세요. 더운데 잘 드셔야지.”



* <좋은 생각> 2018년 12월호(38쪽)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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