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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Sep 01. 2018

이번 달만 버텨봅시다

<이번 달만 버텨봅시다>(마음의숲)가 출간되었습니다.

여차저차 하여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어디냐 하면, 서른일곱의 여름이다. 남편, 아이, 애인, 돈, 집, 차, 직장…. 없는 것투성이지만 생각 없는 당일치기 삶치고는 제법 잘 해냈다.


듣보잡 대학을 나와 시골 동네 취업 도전에 실패하고, 겨우 술값 정도를 벌어 대충 풀칠이나 하다, 원대한 꿈을 안고 서울행을 택했다. 그때 나이 스물여섯. 그렇게 어느 출판사에 입사해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서른넷. 집 근처에서 식당을 해보겠다는 엄마를 돕겠다고 별생각 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왔다. (사실 일도 지겹고 놀고 싶긴 한데 명분은 없고, 놀고먹기에 서울 방값은 비싸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영화에서처럼) 소확행을 실현하며 나만의 작은 숲을 가질 수 있었을까? 손님이 오면 아기자기한 주방에 들어가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준다. 세상 다신 없을 행복한 표정으로 밥 먹는 손님을 보다 한가로이 책을 읽는다. 손님이 없을 땐 창밖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제철 간식을 먹으며 의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식당 문을 닫고 근처 한적한 해변가로 소풍을 간다. 허허, 얼마나 더 헛된 꿈을 꿀 수 있을까? 이삿짐 차 보조석에 앉아 시골로 내려오며 갖은 미래를 상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나는 정말 웃기고 자빠져 있었다.


알바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알바 몇 번 해본 엄마와 장사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그 흔한 사업 계획서도 없었고, 정해진 메뉴도 없었고, 상권 분석이라든지, 시장 조사라든지, 경력자의 노하우 전수라든지 하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도 나도 겁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고, 생각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었다.


겁 없음과 생각 없음의 대가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치르고 있다. 메뉴를 몇 번이나 다시 만들고, 피크타임에 밥이 떨어져 온 동네에 밥을 얻으러 뛰어다니고, 냉장고 옮기다 몸살이 나 하루 장사 공치고, 2만 6천 원을 26원으로 계산하고, 이익 남기기가 미안해 맨날 손해 보는 장사를 한다. 남는 장사는 애초에 기대도 안 하고, 서울에서 배운 도둑질로 매달 손해를 메우고 있다.


맞다. 이쯤 되면 식당을 정리하고, 엄마와 나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게 매달 버티다 보니, 단골손님도 생기고, 엄마의 손맛을 인정해주는 손님도 생기고, 아플 때 찾아와 죽 좀 만들어달라는 자식 같은 손님도 생겼다. 그들을 두고 식당을 정리하기가 쉬운 건 아니다. 그래서 매일, 이번 달 결제 일까지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연다.


식당을 하며 시간도 없고, 낭만도 없는 데다가, 엄마랑 하도 싸워 마음마저 너덜너덜해졌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 된다면,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면, 그걸로 우리가 버틸 이유는 충분하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잘 살아야 하니까.)


이 마음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돈과 시간은 줄기차게 까먹고 있지만, 서른넷의 나보다는 서른일곱의 내가 훨씬 어른스럽고 듬직하니까, 이제는 나를 조금 더 사랑하고 믿어줄 수 있으니까, 공부하는 셈치고 조금만 더 버텨보는 거다.


* 브런치에 글을 쓰며, 여러 분들의 댓글과 좋아요와 공유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에겐 그런 따스함과 추진력은 없는 듯합니다. ;;;;; 이곳에 이렇게 자그마한 인사를 남기는 걸로 대신하는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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