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건 인간들뿐

by 정안나
3.jpg


1. 오늘은 어떤 책을 함께 읽어볼까요?

오늘 읽어볼 책은 김민지 작가가 쓴 에세이 『시끄러운 건 인간들뿐』입니다. 작가는 ‘만물박사’라는 탈을 쓰고 사물과 나눈 대화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는데요. 책을 읽기 전부터 사물들과 도대체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눈다는 건가 싶어 궁금했습니다. 대화를 나눈 사물은 김치부터 계절까지, 어쩌면 사물보다는 만물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했고요.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도 사물과의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물들의 입을 통한 작가의 생각에서 깊이가 느껴져 ‘사물들이 말하는 삶의 자세’라는 부제를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2. 음, 책 소개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게 느껴지는데요. 김치에서부터 계절에 이르기까지, 만물에 가까운 다양한 사물들이 등장한다고 하셨는데요. 작가가 사물들과 대화를 하게 된 계기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작가는 책에서 자신을 ‘만물박사’라고 부르는데요. ‘만물박사 소개’ 글에서 작가는 “그저 집요한 자기 성찰 능력을 발휘해 제 모든 모순을 밝히는 데 재미를 느끼는 한낱 인간”이라고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 ‘집요한 성찰 능력’ 덕분에 사물들과 대화하게 된 것 같았는데요. 사물과의 대화라고 하지만, 이게 사실은 작가 혼자 펼치는 상상의 나래거든요. 냉장고를 열다 마주한 김치를 보다 생각에 잠긴다거나, 흰쌀밥을 보다 생각에 잠긴다거나…. 생각이 그 끝에서 대화의 형태로 표현되었다고 하면 적절할 것 같은데요. 추운 겨울 길에서 만난 율무차 자판기나 붕어빵, 막다른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주춤하던 순간, 같은 듯 다른 음식인 참기름과 들기름 같은 것들을 보며 누구나가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에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집요한 자기 성찰 능력을 발휘해 사물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라…. 역시 재미있네요. 자기 성찰을 하다 보면 삶에 대한 성찰 또한 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요. 그래서 앞서 책을 소개하시면서 이 책에 ‘사물들이 말하는 삶의 자세’라는 부제를 붙여주고 싶다고 하신 것 같아요. 사물들이 말하는 삶의 자세에는 어떤 것들이 있던가요?

제가 너무 집중해 읽어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물이 삶의 자세에 대해 한 문장쯤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수저는 말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매고픔에 휘둘리지 않고 어느 정도 허기를 다스릴 수 있을 때 인간은 성숙해져.” 허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삶에 있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다스릴 수 있어야 인간은 성숙해진다는 말이, 어쩌면 인간이 고통을 견뎌내는 데 대한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말이었습니다. 참기름의 “유심히 살아가는 존재들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이라는 말은,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는 태도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했고요. 막다른 길의 “어떤 길을 돌아 나와야만 이어진다”는 말은, 한 가지에 몰두하기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4. 어느 정도 허기를 다스릴 수 있을 때 인간은 성숙해진다…. 수저가 꽤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삶의 자세’를 말하는 사물들 외에도 재미난 사물들과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 책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내용이라든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사물의 이야기가 있으셨을까요?

개인적으로 에세이 중에 제일은 재미있는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 책은 그에 부합하는 내용이 많아서 읽는 게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엄마가 보내준 김치 한 통에 부담을 느끼는 만물박사에게 김치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하기를 권하는데요. 김치 입장에서 그것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만 꺼내는 연습부터 해보라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별거 아닌 이야기로 만드는 김치의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또… 흰쌀밥을 누가 모실 거냐를 두고 쌈밥이나 주먹밥, 국밥 등이 모여서 논쟁하는 부분에서는, 아 이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가 싶더라고요. 만물박사가 밖에 나가 열심히 돈 버는 동안 세탁기나 에어컨, 서큘레이터 등이 만물박사의 집이라는 회사의 직원으로 등장하는 부분도 재미있었고요.


5.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물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며 지내는 작가의 태도가 책 한 권을 완성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평소에 누워 지내길 즐긴다는 작가가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문턱이나 서랍, 머리카락 등을 보면서 이렇게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고요. 식혜나 수정과,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등장해 만물박사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부분이 책에 나오는데요. 만물박사는 결국 무엇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 이런 책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6. 우울하거나 생각이 많은 날 펼쳐봐도 좋은 책 같습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가 있을 텐데요. 그때 화를 내거나 울거나 훌쩍 떠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시간이 없다면 이 책 한 권을 차분히 읽어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만물박사가 사물들과 나누는 대화는 너무나 무해하고 재미있어서 내 안의 스트레스조차 잠들게 하는 것 같거든요. 불타는 금요일 밤! 마음 쉴 곳이 필요하다면 시끄러운 인간들을 피해 『시끄러운 건 인간들뿐』을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음악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