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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윤 Mar 21. 2024

네모난 바퀴

내겐 너무 어려운 시작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게 된다.


'쓴다는 건 어렵다.'(당연하고 재미없음)

'나에게 쓰는 것은 왜 어려울까'(어쩌라고)

'나만 이렇게 어렵나?'(너무 진부함)



 브런치 서랍에 저장된 글들은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고, 발행된 글은 고작 두 편.

혼자 저지레 하듯 흩쳐놓은 글들은 말이지 노트에, pc 하드 메모장에, 한글 파일로, 어딘가 끄적끄적 수두룩 빽빽. 누군가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혹은 누군가 봐주기를 바라니 글을 쓰기 어려운 걸까. 아니면 그냥 복잡한 내면에 나 혼자 어려워하며 쓸 수가 없는 걸까. 그냥 아무렇게나 어딘가에나 쓸 수도 있지 않은가. 남들 다 그렇게 블로그에, 일기장에, 다이어리에 쓴다 싶다.


 그런데 그렇게 소비하기엔, 뭔가 아쉽다. 내키지가 않는다. 가끔 종이에 글을 쓸 때곤 늘 잡생각으로 빠지는데 꼭 드는 생각이 ' 아, 이렇게 환경을 오염시키는구나. 이딴 단어와 문장들로 이 세계를 오염시키는구나. 차라리 내 머릿속에 부유하게 둘걸.'이다.

지금 딱 그런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점점 파고들게 된다.

쓴다... 쓴다는 건 뭘까... 언어란, 단어란, 문장이란, 소통이란 뭘까 하며 혼자 망상에 빠지게 된다. 시각예술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시각... 시각예술이란 뭘까. 이 예술은 너무 편협한 장르인 것만도 같고, 본다는 건, 느낀다는 건, 산다는 건 뭘까 하는 온갖가지의 망상에 휘둘리며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른다. 그러다가 문득,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내야만 할 때, 무작정 무언가를 시작하고 그 데드라인이 눈앞에 있을 때, 이러한 망상들은  기가 막히게 정리된다.


 인생을 완벽하게, 완전하게,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준비하고 계획하는 일들은 내 발목을 잡는다. 나도 알고 있다. 나의 망상이, 나의 걱정이, 나의 노파심은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을.  그러나 유약한 육체와 정신을 가진 나는 또다시 무너지고 나 자신을 괴롭힌다. 이럴 때 제일 좋은 해결책은 일단 지르는 것이다. 글 안 써져? 올릴 수 없어? 그럼 일단 아무렇게나 써서 올려. 누가 보겠어 이런 똥글망글을 이러며 올려버리는 것이다.  


 철저히 완전하게 실패할 수 없는 계획을 수립한 이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다짐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건 이후 성공 가능성이 있는 나에 심취해 있는 채로 있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에 지껄이는 변명이다. 이렇게 무작정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면, 얼렁뚱땅 그다음이 보인다. 그리고 어찌어찌해내고 나면 그다음이 보인다. 그렇게 '이래도 되나...?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하며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무언가가 되어 있긴 하더이다. (발행목록이라도 쌓이겄지 뭐)


그렇게 네모난 바퀴로 뚱꽝뚱땅 굴러도 어찌어찌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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