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국도를 달릴 때
민트 캔디를 먹고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목구멍이 차갑다 못해 아프다. 와우 나 살아있구나.
이상하다. 장마라고는 하는데, 비가 장대같이 무섭게 쏟아지질 않으니 이상하다. 우중충하니 시간에 맞지 않게 어두운 하늘을 보면 당장이라도 퍼부어 댈 것도 같은데, 비는 오질 않는다.
일단 약간 흐릿한 눈에 안경을 씌워주고 두 시간 반짜리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출발한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아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출발하기 직전만 해도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인해 심장이 뛰고 살짝 각성된 상태였는데, 운전 시작과 동시에 졸리다니?
급한 데로 팟캐스트를 열어 ‘지대넓얕’ 채널의 납량 특징을 틀었다. 역시 아주 가볍고 실없으면서도 은근히 주워 담을 것들이 있어 즐거웠다. 그러나 역시, 이 환경 또한 무뎌지며 졸린 것 까지는 아니지만 멍해지기 시작했다.
앞 뒤로 차가 한 대도 없다. 먼저 지나간 차들이 남기고 간 물안개들이 은은하게 도로를 메꾸고 있고, 저 멀리 겹쳐진 산들 사이사이에는 뿌연 안개가 둘러싸고 있다. 하늘의 색은 무색에 가까울 만큼 채도가 없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실없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웅웅대며 차 안을 채운다.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엑셀 위에 올려둔 발은 어디에 붙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계기판의 rpm은 고정된 채로 차가 미끄러지고 있다.
혹시, 내가 지금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서 이미 죽은 건 아닐까? 그런데 내가 죽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귀신이 된 건 아닐까? 내 다리는 어디에 붙어있는 거지? 허리가 뭉근하니 아픈데 나 영혼은 아닐까?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다행히도 내가 아직 인간임을 깨달았다. 졸리다고 있는 데로 마셔버린 액체류들 덕에 나의 방광이 노크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아직 한 시간 남았는데.
이 글을 쓰고 있을 수 있었던 건 인간적으로 잘 해결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