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그라탕과 무화과
간만에 무언가를 해 먹었다.
나는 일을 하면 밥을 먹지 않는다.
이것 하나만, 하나만 하고 하다가 결국 때에 맞는 끼니를 거르고야 만다.
나의 일과에서 끼니를 챙기는 것은 우선순위 몇 번째 즈음되려나. 늘 뒷전으로 밀려나 주린 배를 움켜쥔 채 편의점으로 향할 때가 다반사, 그 마저도 그냥 뛰어넘고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보상이라도 하듯 한 번에 몰아먹는 일들이 태반이다.
오히려 너무 사랑한 나머지 포기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먹는 것을 사랑한다.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것, 그 무엇을 결정짓고 어떻게 먹을지 또 고민하는 것, 먹을 것을 준비하고 눈앞에 놓여 첫 술을 뜨기 전 약간의 설렘, 그것을 먹을 때, 먹으면서도 이 한 입, 한 입의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는 것, 다 먹었을 때의 포만감과 약간의 아쉬움과 같은 그 모든 과정을 사랑한다.
이 과정을 충분히 즐길 만큼의 여유가 없을 때,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차선책으로 간단히 후다닥 영양보충을 하는 일이 나에게는 썩 내키지 않은 일이기에, 나는 포기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밥을 먹는 것을.
이런 와중에 부엌에 들어가 무언가를 해먹을 계기가 생겨 간만에 요리를 했다.
이 계기라는 것이 사실 썩 유쾌한 사건은 아니나 모든 일에는 양면의 부분이 존재하듯, 건강한 것을 찾아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해 먹게 되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부드러운 순두부를 둥그렇게 썰어 깔고는 집에 굴러다니던 아라비아따 소스를 한 겹 발랐다.
선물 받은 양파는 뭐가 이리 매운지 썰면서 눈물 콧물을 다 뺐다. 가지와 애호박, 토마토까지 잘게 썰어내고는 위에 얹어준다. 소스를 한 번 더 바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더 담백한 야채의 맛들을 위해 소금 후추 간만 살짝 했다. 계란 2알을 풀어 조심해서 사이에 흘려보낸다. 190도로 예열한 오븐에 2-30분가량 구운 후 위에 치즈를 올려 한 번 더 구워내면 순두부 그라탕 완성.
얼른 커서 따먹기만을 기다리던 무화과를 미안하지만 더는 참아줄 수 없어, 마트에서 한 박스 샀다.
보드라운 표면을 느끼며 반을 가르자 은은한 단내가 올라온다. 이 날은 스파이시함을 느끼고파서 후추만 톡 뿌렸다.
압력밥솥에 쪄 낸 구수한 맛의 계란 한 알과 결국 배불러 먹지 못한 소세지 하나까지 차려내고 만족스럽게 앉으니 준비시간만 1시간 훌쩍. 아차 커피를 안 내렸네, 하며 급하게 전자동 머신에 커피명가 원두를 부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바디감에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이제, 1시간을 들여 꼭꼭 씹어 천천히 먹어보자.
오늘의 소리는 FM 93.1 생생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