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트리를 시작으로 국립공원 탐방여행이 시작되었다. 조슈아트리가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학기 중이었어도 수업 며칠 빠지고 요세미티로 향하였다.
원래 LA에서 요세미티까지는 약 6시간에서 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요세미티로 출발한 그날은 마가 낀 날인지, 여기저기서 공사를 해서 요세미티로 가는 길이 사용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돌고 돌아 8시간의 운전 끝에 겨우 도착했다.
미국은 한국마다 곳곳에 휴게소가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요세미티를 가는 동안에도 당연히 휴게소는 없었고, 휴게소가 없는 대신 음식점이라도 가서 조금은 쉬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갔어야 하는데.. 운전 초보의 욕심으로 그냥 LA 집에서 8시간 동안 한 번을 안 쉬고 쭉 밟아서 요세미티에 도착했다.
만약 8시간 동안 베가스 가는 길처럼 쭉 일직선으로 쫙쫙 뻗은 길이었다면 나도 그렇게까지는 짜증과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세미티 근처에 오면서부터, 정말 한눈팔면 바로 저승길이 바로 펼쳐지는 꼬불꼬불 낭떠러지가 계속 이어졌다.
화장실 가고 싶은데, 화장실은 안 나오고, 길은 계속해서 꼬불꼬불 낭떠러지이고.. 정말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었다. 그래서 요세미티에 도착해서 내 발이 땅에 닿자마자 남편에게 내 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운전 연습하라고 했지..”
“나보다 시간도 더 많았던 사람이 왜 운전 연습을 안 했어.. 나 무시한 거지?”
정말 차에서 발이 땅에 닿자마자 남편에게 운전 연습을 안 한 것에 대한 저주를 퍼붓기 시작해서, 트레킹을 하면서까지 계속해서 남편에게 화를 냈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 우리가 목적지로 생각했던 트레킹코스의 시작점부터 끊이지 않고 남편에게 화를 냈다. 한참 화를 내고 있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쭉쭉 뻗은 나무, 거대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보는 너무 멋진 광경에 넋을 잃었다. 나는 이러한 풍경에서 행복해 보이는 커플의 이미지를 사진에 담고자 남편에게 웃으라며 강요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분이 상했던 남편은 억지로도 웃지 않았다. 억지로도 웃지 않는 남편을 보며 다시 부부싸움 2차를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나의 화풀이는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운전연수를 왜 안 했냐.. 그 말이 정말 부러진 레코드판처럼 나오고 또 나왔다.
사실 내가 대체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분풀이를 하고 싶었고, 분풀이를 하면 할수록 내 마음만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을 눈앞에 두고도 나의 마음은 지옥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한국에서 내 말을 따르지 않고, 운전연수를 안 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 싶은데 그 당시에는 남편이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거의 1박 2일로 남편에게 분풀이를 하고, 나에게 하나라도 지기 싫어하는 남편도 나에게 계속 따박따박 맞받아치면서 싸움은 점차 커져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우리 둘은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사들고 merced river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그 전날 어찌나 남편이 나의 화를 받아주지 않고 잘도 받아치는지 말로 테니스 치는 줄 알았다. 우리 남편 말 그렇게 잘하는 사람인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둘이 싸우면 남편은 화가 나서 자버리고, 나는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고는 했다.
인터넷은커녕 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요세미티에서 남편은 나를 피해서 잘 곳이 없었고, 나는 남편을 피해 혼자 산책하거나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싸움이었다. 그다음 날 커피를 사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서로 조용히 merced river 근처와 mirror lake 근처까지 걸었다.
주변에 우리밖에 없어서인지, 아니면 신선한 공기와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고 있어서인지 서로 분했던 마음들이 점차 누그러졌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말 없이 Tenaya lake 근처를 하이킹했다. 우리는 사람도 없고, 잔잔한 호수를 보며 남편과 옹기종기 앉아햇볓을 쬐고 있다 보니 더 이상 싸움이 진행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눠준 비닐봉지 같이 생긴 아주 얇은 돗자리를 펴고 남편은 미국애들처럼 드러누워 한숨 자고, 나는 호수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싸움이 멈쳐져서일까, 아니면 호수가 우리를 치유해서일까.. 우리는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재잘대며 신이 나서 다음 트레킹 장소로 이동했다.
요세미티에는 트레킹 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데 이런 곳곳에 주차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언덕쯤에 주차를 하면서, 혹시 차가 미끄러질 수도 있을 것을 대비하여 유튜브 등에서 본 것처럼 핸들을 도로와는 반대로 완전히 확 꺾어서 주차를 해두었다.
트레킹을 잘하고 내려와서 이제 다시 숙소로 가려고 하는데, 핸들이 꺾긴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요세미티와 같은 미국의 큰 국립공원에서는 숙소를 제외하고 트레킹을 하는 깊은 숲에서는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다. 또한 지나가는 차도 없다. 그만큼 인적이 드물다.
나와 남편은 패닉 상태로 거의 한 시간을 핸들을 붙잡고 씨름을 했다. 당연히 전화도 터지지 않고,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상황에 우리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 차 한 대도 없었던 상황이었고, 날은 점차 어두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죽나 보다.. 하다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남편한테 근처에 혹시라도 무슨 숙소나 빌딩이나 뭐라도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라고 소리를 지르며 빨리 다녀오라고 보냈다.
약 20분 정도 지난 후, 남편이 저쪽을 걸어가다 보면 무슨 건물이 보이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만 하였다. 그냥 포기하고 온 남편에게 다시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이대로는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건물이 있다는 쪽으로 뛰어갔다. 작은 건물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도와달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다가 다행히 그 건물 뒤부분에서 어떤 남자가 유니폼을 입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진짜 구세주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람에게 지금 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분은 흔쾌히 자기가 하던 일을 놓고 우리의 차가 있는 곳까지 와서 락이 걸려 있는 핸들을 자신의 온몸을 움직이고, 핸들을 마구마구 돌려서 풀어줬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끝까지 핸들을 돌리면 락이 걸려서 안 풀리니까 끝까지는 돌리지 말라고까지 친절히 설명해 줬다. 너무 고마웠다. 그때는 미국의 국립공원을 많이 가보지 않아서 그분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분은 요세미티에서 근무하는 레인저였다. 미국 국립공원에는 국립공원을 관리하고 지키는 레인저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레인저 숙소가 다행히 우리 차 근처에 있어서 (사실 차가 파킹된 부분으로부터 걸어서 20분~30분 근처에 있었다. 그분은 그 거리를 걸어서 우리 차로 와서 도와준 것임), 그리고 그분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다음 날 우리는 다시 아침부터 트레킹을 시작했다. 고요한 가운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약간은 차가운 듯한 상쾌한 공기.. 이 모든 것이 요세미티에서는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트레일에서도 사람들을 볼 수 없고, 나와 남편이 이 자연을 모두 가진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심지어 어제 죽을 뻔했다는 사실도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는 산에서의 운전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생각한 나는 기름을 넣기 위하여 주유소로 갔다. 사실 기름도 그렇게 부족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혹시라도 이런 곳에서 기름이 또 떨어져서 어제처럼 다급한 상황이 될까 봐 주유소에 들어가서 기름을 넣고자 차를 파킹했다.
“끼익~”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서 나는 파킹을 제대로 하고자 엑셀을 조금 더 밟아 차를 앞으로 이동시켜다.
“멈춰봐 멈춰봐~”하는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다급하게 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내가 그 주유기 옆에 있는 노란색 철봉 같은 것을 차의 옆구리로 박은 상태로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의 검은색 차는 옆꾸리에 치타처럼 노란색 줄무늬를 얻게 되었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그냥 화를 풀 곳이 없어서 남편한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정말 솔직한 속마음으로는 마냥 울고만 싶었다. 운전을 한다고는 했는데, 이 꼬불꼬불한 산길을 운전할 때마다 힘들었고, 이제는 차에 줄무늬까지 만들었으니 더는 운전도, 여행도 하기가 싫었다.
아마 이번 요세미티 여행이 여행 중에 역대급으로 남편이랑 많이 싸운 여행인 것 같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운전 연습을 안 했던 남편을 이제 와서 들들 볶아봤자 달라지는 것은 나의 기분과 남편의 기분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정말 쉼 없이 남편에게 화를 냈다.
나의 가장 큰 단점은 화를 참고 참고 계속 또 참고 참다가 터질 때 정말 봇물같이 빵 하고 터진다는 것이다. 압력밥솥에 밥을 하듯, 나는 화를 계속 참다가 결국 폭발한다.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자라나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 또는 지인 여럿과 손절한 경험이 있었다.
남편한테도 이는 똑같이 적용되었다. 미국에서 고등학생 때 1년간 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미국을 가기 전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도착해서는 어떻게 살았으면 하는지, 이 시점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말해왔고 의견을 표현했다. 남편은 자신의 주관으로 나의 의견에 대하여 반대하였고, 나는 사소한 지점에서는 더 이상 싸우기 싫어서 남편이 하자는 대로 놔두고 나의 화를 서서히 키워오고 있었다.
내가 납득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남편의 주장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커져온 화는 이 운전을 기폭제로 정말 다이너마이트 폭발하듯 폭발했다.
요세미티에 있던 약 2박 3일간의 일정 동안 결혼해서 3년 동안 싸운 싸움을 다 합쳐도 모자랄 만큼 많이 싸우고 다퉜다. 그리고 그때 너무도 많이 서로의 아픈 부분을 건드렸는지, 우리는 이 여행을 기점으로 조금만 서로의 아픈 부분을 건드려도 너무 쉽게 싸움의 싸이클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