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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Apr 23. 2023

조각 글 모음집_vol 2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1.

그냥, 그런 날들을 꿈꾸고는 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즐겁기를, 아름다운 것을 쫓는 이들이 본인의 행선지를 의심하지 않기를, 가려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누군가의 앞을 가로막지는 않기를 바랐다.

테러와 반인륜적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아이들의 교실과 햇살을 거두지 않고, 사람들의 상상 속에 푸른 것과 예쁜 것들이 가득찰 수 있는 그런 날들이 오기를 바랐다.

우리나라가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에 힘을 쓰고, 젠트리피케이션을 경계하고, 사람들은 생겨나는 것보다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을지로와 종로 뒤편의 거리들이 조용히 잊혀지지 않는 날들을 바랐다.

취향과 성향과 천부적인 어떤 것들이 한 사람의 선택을 결정해버리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 더 나와 너와 타인이, 해가 지면 하늘이 붉어지고, 맑게 갠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봄이 오면 꽃이 핀다는 자연스러운 여유를 여과 없이 자체로 줄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나의 기도는 내일은 저를 포함한 모두가 오늘보다 나은 하루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신의 영역이 아닌 곳, 나는 그저 그곳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며 그런 날들이  오기를 바라고 싶은 건데,

요새는 그러게, 잘 모르겠는 날들이다.


2.

우리를 괴롭히는 나선의 어떤 것들은 너무나도 날선 모양 그 자체로 빠르게 다가오고는 한다.

버티기엔 힘든, 바라보기엔 벅찬, 웃어 넘기기엔 쉽지 않은, 

날것의 전투적인 무언가는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리기에는 몹시도 매서워서 뭐라도 해보려 허둥대 보지만, 그치만.

아직은- 이라는 생각들이 자리를 잡으면 금세 우울과 불안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덜 배우고 미처 자신 없는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저 사라지지 않고 가라앉아버린 희뿌옇고 굳어진 불안들이 그나마의 가치를 지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뿐이다.

가둬지고 오래된 감정은 미처 근원을 잃고 떠돌며 가슴 속에 너울을 불러오겠지

다만

울렁거림에 너무 지쳐있지 말자



3.

그리워

그리운 것도 세상에 뿌려진 수많은 사랑의 하나이려나


4.

날이 다시 추워져서 다행이다

J는 싫다고 했지만

두텁고 포근한 섬유 속에 내 여타의 것들을 묻어버릴 수 있는 날들이 길어져서 다행이다

끙, 하고 추워진 공기를 피하려 이불을 끌어올릴 때의 짜증과 왠지모를 수상한 기쁨이 느껴지는 때

이 수상할 정도로 모순적인 순간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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