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라지고 싶었을지도
불을 끄면 슬퍼지던 때였다.
가끔 삐져나오던 눈물의 이유를 모르겠던 때였다.
사라지는 것을 생각해 보던 때였다.
잘 지내냐고 묻는 누군가에게는 누구보다 잘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할 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동네가 친숙해졌고, 거리를 걷는 게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나름 잘 지냈다.
다만 자신이 없어졌다.
설렘이 차지하고 있던 곳에 불안이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워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했는데, 변화들을 잘 감당해냈다고 생각했던 게 오만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낯설었다
하루하루 어떤 모습으로 누군가를 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불안해했다
좋은 사람들에게 자신 없는 내 모습을 들킬까봐 무서웠다
집에서 찾아오는 적막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나는 무척이나 지친 채로, 집에 왔지만 집에 가고싶었다
그렇게 세면대 앞에 서서 양치를 빌미로 헛구역질을 뱉어냈다
머릿속을 헤집는 생각들에 글을 쓰려다 그만두었다
생겨난 변화들을 외면하고자 집어든 방어기제는 주저하는 나였고, 예민한 나는 어떤 것들보다 주저하는 나의 모습이 가장 적응할 수 없었다
나보다 지혜로운 어떤 사람은 이 감정을 누구나 겪는 한 차례 지나갈 무언가로 여기고 현재에 집중해 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렇게 여기고 싶었다
나는 분명 잘 지냈지만 요새 그런 하루들을 보냈다
마음속에 유해한 막막함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즐거웠다
좋은 곳이었고, 웃음과 즐거움이 잔뜩 묻어 나풀대는 나흘의 시간들이었다
함께해준 옆자리의 어떤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내 감정과 그간의 고민들을 무용하게 했다
여행에서 성당을 자주 드나들었다
나는 그릇이 작고 감성적인 사람이라 불안이 구슬만하든 바위만하든 굴러오는 슬픔에 작용에 어쩔 줄 몰라한다
그래서 불안의 본질을 알고 굴러오는 여타의 것들을 성숙하고 지혜롭게 다룰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굴절하여 들어오는 사선의 빛은 여유와 평온함을 가득 담은 채 안온하게 다가왔다
나는 요즘의 어떤 때보다 비어있는 생각 속에서 의미 모를 다짐을 새기고 성당 밖을 나섰다
우습게도 그동안의 주저가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던 구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서두로 시작하는 생각들이 자라났다
나는 걱정이 많아서 언젠가 또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지도, 별 것 아닌 일들에 고되어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무형의 아프도록 단호한 감정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으리라는 어떤 기분을 느꼈다
할슈타트 호수에 눈 시리게 비치던 햇살과 그라츠 성당 속 안온한 다색의 빛은 그 “어떤” 기분의 상징성으로 남을 거고
조용히 기억을 들출 때 나는 아마도 의미있는 어떤 감정덕에 용감해지겠지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