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아이는 반응이 없을까?
29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며, 나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첫 수업에서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도 있고, 엄마 손을 놓지 못해 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영어 수업이 시작되면 갑자기 배가 아프다거나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같은 수업, 같은 환경에서도 아이들의 반응은 매번 달랐습니다. 가르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아이들이 영어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식이 정말 다르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해도 어떤 아이는 금세 따라오지만 어떤 아이는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는 노래와 율동에 열광하는 반면, 어떤 아이는 그 시간만 되면 뻣뻣한 로봇이 됩니다. 처음엔 답답하고 울고 싶은 날도 많았어요. ‘역시 나는 티칭은 적성이 아닌가 봐’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왜 이 아이는 반응이 없을까?”, “수업이 재미없나?” “어디가 불편한 걸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하나씩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는 말이 없는 대신, 내 움직임을 세심하게 따라 하고 있더군요. 반응이 느린 게 아니라, 준비가 필요한 아이였던 겁니다. 또 다른 아이는 친구들과 경쟁하거나 지적당하는 상황이 불안했던 아이였습니다. 알고 보니, 수업을 방해한다고 여겨졌던 행동들이 모두 '감정의 신호'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수업보다 아이를 먼저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말보다 표정, 행동, 눈빛을 먼저 살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의 반응을 일정한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아이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에너지를 표현합니다.
어떤 아이는 교실 뒤쪽에서 조용히 관찰하며,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아이는 작은 실수에도 크게 상처받곤 합니다.
어떤 아이는 친구와 함께할 때에만 더 집중력이 살아납니다.
어떤 아이는 이유를 납득해야 비로소 움직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이 다섯 가지 유형 중 하나로만 나눌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두세 가지 성향이 혼합되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 유형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그동안 답답했던 수업도, 포기하고 싶었던 학습도 다시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려하지 마세요. 대신 아이의 방식대로 다가가면 됩니다. 내가 아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아이를 이해하고 기다리는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영어를 싫어하게 되는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책입니다. 아이의 유형을 이해하고, 맞춤형 전략을 세워주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영어 인생을 바꾸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저는 현장에서 분명히 확인해 왔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 더 많은 부모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의 영어 공부가 억지스러운 고통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하고 싶어지는 경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영어와 친해질 수 있도록. 그 시작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