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선언(ft 엄민정 지음)

선서, 나는 오늘부터 작가로 살고자 합니다.

by 작가 앨리스

서평 : 작가선언(ft 엄민정 지음)


< 작가 선언> 은 말 그대로 하나의 선언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중요한 순간에 이름 대신 직업을, 얼굴 대신 역할을 먼저 내민다. 아내로, 엄마로, 혹은 ‘무직’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마우스 휠을 내리는 사람으로. 엄민정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 앞에 지장을 찍듯, 이 책을 내민다.


책의 표지는 지문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독립투사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찍었던 지장처럼, 이 책은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저자가 되겠다"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거창한 수식어를 얻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에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태도임을 이 책은 처음부터 분명히 말한다.



엄민정 작가의 글은 늘 일상에서 출발한다.


모기, 설거지, 공원에 핀 꽃, 산책길의 짧은 장면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 앞에서 작가는 오래 머문다.


그리고 충분히 바라본 뒤, 그 안에서 보석 같은 문장을 꺼내 놓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깃들어 있다는 말을, 이 책은 매 페이지에서 증명한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작가의 ‘말을 아끼는 방식’이다.


직설로 상처를 남기기보다, 침묵 끝에서 글을 선택하는 태도. 예쁜 장미를 꺾어간 친구에게도 말 대신 글로 마음을 건네는 장면에서, 글이 얼마나 깊은 배려가 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낀다.


" 그런데 있지


무언가를 좋아할 때 지켜보는 모습도 고우면 어떨까 해,


다음엔 예쁜 것 앞에서


잠시 더 머물러 볼래?


손보다 눈이 닿는 순간들이 아름다움을 오래 남기더라고 ,,,"


- 작가 선언 페이지 46 by 엄민정 작가님-


“말을 아끼면 글이 된다”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룰처럼 읽힌다.


코로나라는 시대적 재난 속에서 암 진단까지 겹친 시간들.


작가는 그 불안과 공포를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날것의 감정으로 쏟아내지 않고, 삶을 끝까지 들여다본 뒤 정제된 언어로 눌러쓴다.


‘진정한 고통은 자유를 빼앗긴 채 흘려보내야 했던 시간 속에 있다’는 문장은, 경험에서만 길어 올릴 수 있는 문장이다.


'마음이 무거운 날엔 가벼운 것조차 버거워진다'는 표현 또한 마찬가지다.


위로에 대한 작가의 시선도 오래 남는다.


준비되지 않은 위로는 벌이 될 수 있다는 말,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라는 고백.


“밥 먹을까?”, “뭐 먹을래?” 같은 사소한 질문이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된다는 대목에서, 위로란 쓸모없을수록, 의미가 작을수록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배운다.

엄민정 작가는 멋지게 사는 법보다 제대로 사는 법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삶이 가장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그 장면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하는 용기. 그리고 그 시간을 언어로 기록하는 성실함. <작가 선언>은 그렇게 완성된 책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 역시 생각하게 된다.


더 그럴듯해 보이는 글이 아니라,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눈으로만 보는 삶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삶을 살고 싶다고.


작가 선언은 결국 묻는다.

당신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지장을 찍을 것인가?!


곧 그날이 내게도 도래할 것이다.


#작가선언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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