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벌이 아니라, 비교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때였다.
조금이라도 어울리고 싶었던 나는 같은반 남학생들 사이에서 "동전 따기" 놀이가 유행하던 것을 알고
처음에는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며 머뭇거리다 어느 순간 어머니한테 100원 동전 여러개를 받아와 쉬는 시간에 종종 참여하곤 했었다.
마음은 여전히 거리감이 있었지만 그때의 난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 지고 싶었나 보다.
그 시절, 어떤 무리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으니까...
하지만, 이런 놀이들은 학교에서 금지된 놀이였기에 주변을 살피며 마음을 온전히 놓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실들을 점검하고 있던 교장선생님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나는 같이 하던 애들과 함께 교장실에 끌려 갔다.
그는 화난 기색보다 얄미운 미소가 살짝 비쳐 있었다..
오히려 살짝 웃으며 우리들을 한심한 표정으로 보는 느낌이었던게 아직도 생생하다.
훈계한 후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 걸렸을때의 처벌 원칙이었지만 교장선생님은 나 포함 걸린 사람들의 성적표를 가져와 한 명씩 추궁하기 시작했다.
"넌 그래도 좀 하군"
"넌 중간은 하는구나"
"너 이 성적으로 어디갈래?"
교장선생님은 대놓고 큰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혼을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작아졌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낮은 성적표를 가지고 있었고 교장 선생님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부모님 부를까 말까 생각했지만 봐준다"는 말로 끝맺음을 맺었지만...
다른애들은 내 성적을 듣고 자기들끼리 키득거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너 진짜 이 등수야?"라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어봤고 그 말은 놀라움이 아니라, 놀림에 가까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뺨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목 뒤로 삼켜졌다.
그날 이후 나는 그들과 심한 거리감을 느끼며 옆에서 가끔 구경은 해도 다시 그 놀이에 참여하는 내가 부끄러워졌었다.
마음속의 부끄러움은 교장선생님의 눈빛 때문도, 벌 때문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나를 작게 여긴 것 그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시험, 성적, 등수...
그때는 그게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그때 나는 교장실에 끌려간 게 아니라,
스스로를 교장실 바닥에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진짜 수치심은 누군가의 눈빛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작게 보는 순간에 태어난다는 걸.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의 기준에 내 존재를 맡기면 안 된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