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봉사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중학생 시절, 방학을 앞두고 선생님들은 늘 말했다.
“방학 중에 교내 봉사활동 하면 봉사 점수 채울 수 있다.”
그 시절 나는 ‘봉사’란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일이라 배웠다.
그래서 그 말에 조금의 의문도 없이 '방학 숙제 겸 기분 좋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학교나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말해, 방학 중 학교에 나간다는 건 고역이었다. 그래도 ‘봉사’라는 단어가 가진 뿌듯함을 떠올리며 나를 달랬다.
학교에 도착하니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보였다.
그리운 느낌은 없었다. 단지 ‘방학인데 왜 또 이 사람들을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담임 선생님이 나타났다.
한 손엔 집게, 다른 손엔 봉투를 들며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한 바퀴 돌며 구석구석 쓰레기 주워. 봉투 가득 채워야 돼.”
그리고는 사라졌고 중간중간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러 나타나곤 하였다.
나는 그 순간 어렴풋이 느꼈다. ‘이건... 봉사가 아니라 그냥 청소인데?’
그렇게 우리는 학교 구석구석을 ‘지시받은 대로’ 청소했다.
자발적인 도움도, 고마움도, 공공의 이익도 없었다.
어느 날 지각 때문에 벌칙을 받게 나는 교무실과 교장실 청소를 맡게 되었다.
책상 위에는 한 장의 종이가 있었다.
“○○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교내 봉사활동을 합니다.”
마치 계약서처럼... 내 이름을 쓰고 시간을 적으라는 지시.. 거기에 거부권은 없었다.
말 한마디로 ‘벌’은 ‘봉사’가 되었고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닌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청소를 끝낸 나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 ‘봉사’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봉사 :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행동들...
내가 본 정의는 이랬다. 하지만 내 안엔 질문만이 남았다.
내가 속이 좁은 걸까? 봉사’라는 말장난에 속은 걸까?
누군가는, “이것도 사회성 훈련이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겐 그게 ‘돕는 마음’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의무’로 주어진 명령이었다.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굳이 ‘좋은 단어’를 붙이는 건 그저 착한 척하는 방식의 통제였다.
나는 그날 이후 봉사라는 단어를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 단어 안에는 ‘자발성’이라는 조건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날의 교장실 바닥을 쓸 문지르던 내 손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