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복종, 숨겨진 거절

나는 무임승차한 것이었을까?

by 팅커

학창 시절, 나는 항상 모둠 활동이 시작될 때면 긴장했다.

누구와 조가 될까? 누가 리드할까? 나는 어떤 위치에 놓일까?

이 모든 것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다.

늘 누군가의 결정이 있었고, 나는 그 결정에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 중학교 2학년, 그날의 기시감...


초등학생 때까진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후, 나는 본능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누가 무언의 리더인지, 어떤 흐름이 형성되는지, 그리고 나는 그 흐름에 끼지 못한 채 구석에서 관망하고 있다는 걸...


중학교 2학년, 어느 과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행평가를 위한 조별 활동이 있었다.

전교 1등 성적의 학생, 짝꿍 하면서 약간은 친했다 생각한 B와 같은 조가 되었다.

전교 1등은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리드하려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조원들은 자연스레 그에게 기대며 결정권을 넘겼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형성된 흐름이 그를 리더로 만들었다.


◆ 조용한 복종과 숨겨진 거절


나는 속으로 동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을 내기도 전에 결정이 이뤄졌고 그 속도감에 눌려 나는 따라가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워져 보고서를 만들 장소를 제공하고 싶은 생각에 "우리 집 학교에서 가깝고 공간도 적당하고 프린트기도 있어"라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지만 짝꿍 B는

전교 1등 집이 더 넓고 다른 애들 집과도 더 가깝잖아.” 라며 내 말을 단숨에 잘랐다.


의사 결정은 바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은 정해놓았고 하교 시간 전교 1등이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 집 가까운 애들끼리 모여서 만들기로 결정했고 넌 보고서 제작 비용의 얼마만 분담하면 돼" 그리고는 내가 집에서 돈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자존심 상하고 나는 빼놓고 자기들끼리 모든 걸 결정해 버린 느낌에 소외감을 느꼈지만 나에게 더 뾰족한 수는 없었고 무력감이 밀려왔다.


◆ 보고서엔 내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없었다.


그들의 준비는 빠삭했고 수행평가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조의 일부였음에도 존재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결정에도 참여하지 못했고, 역할도 없이 돈만 낸 채 조용히 이름만 올라간 기분. 그들은 나를 기여 한게 없다고 놀리지도 않았지만 보고서를 본 나는 마치 제3자,4자와 같은 어색함과 이질감, 작성자 명단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 이름이 적혀있지만 정작 나는 처음 봤고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 졌는지도 모르는 보고서를 보며...

그 보고서엔 내 이름이 올라와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 나는 없었다.


◆ 그날이 생생한 이유


이런 감정은 그날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경험은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날이 유독 생생한 건.. 아마도 그 순간이 ‘나의 위치’를 처음으로 자각한 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단체 활동에서 늘 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는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때, 그 기류와 분위를 느낀 게 맞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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