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점수, 가장 깊은 부끄러움

밤에 갑자기 찾아온 무의식과 자각

by 팅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줄곧 인터넷 검색으로 숙제, 수행평가, 방학 과제들을 해결해 왔다.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시키니까...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어서... 빠르게 끝내고 싶어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으려는 기계적인 마음뿐이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중학교 2학년 때 수행평가다.

담임선생님께서 ‘발명 아이디어’를 주제로 과제를 내셨는데,

나는 여느 때처럼 인터넷을 검색해 쉽게 아이디어 하나를 골랐다.

그리 대단한 과정도 없었고 몇 번 검색해 찾아 자료를 프린트해 제출했다.


제출 후 어느 날...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평소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터라, 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긴장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제출한 발명 아이디어가 가장 기발하다! 독창적이야! 우리 반 학생들 중 네가 제출한 게 가장 좋았어!"

그리고 어느 날 그 수행평가 점수표가 선생님 책상에 놓아진 걸 슬쩍 본 나는 내 점수가 가장 높은 것을 발견하였다. 몇몇 학생들은 내 점수가 가장 높은 걸 보고 의아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한편으로 인터넷에서 그대로 가져온 걸 들킬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오래도록 눈을 감지 못했다.

기쁘지 않았다...

내가 만든 게 아니었는데.. 내 생각이 아닌 걸로 칭찬받는 게 민망했다...

기분이 좋기는커녕, 왠지 속인 듯한 죄책감이 가슴 깊이 올라왔다.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시간을 투자한 학생은 자기 점수에 만족할까?


나는 그 뒤로도 인터넷을 이용해 숙제들을 해결해 왔고 어느 순간 내가 그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땐 단지 혼나기 싫어서.. 하지 않으면 처벌받는 시스템이 두려워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때 내가 그렇게 행동한 건 정말 나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강제로 줄 세우고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구조의 탓이었을까?


이 질문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올라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그게 옳았는지도, 달리 방법이 있었는지도...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처음으로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는 것이다.


그 기억과 무의식은 지금도 가끔 내 안에서 말을 건다.

"너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니?"

그 질문이 부끄럽지만 나는 그 질문 덕분에 조금 더 솔직한 사람이 되어간다.


혹시 여러분도 어린 시절, 기억나는 그런 '작은 부끄러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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