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겸손을 배운 날이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
학교에선 2주에 한 번씩 클럽 활동을 해야 했다.
중학교 때처럼 정해진 활동들 속에서 고르는 구조였고, 인원수 제한까지 있었다.
‘하고 싶어서’라기보단, 그나마 나은 걸 골라야만 했다.
나는 축구를 특별히 잘하진 않았지만 뛰는 게 좋았다.
답답한 학교 생활 중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축구였기에 축구부를 택했다.
같은 반의 ㅇㅈ도 축구부에 있었고 그와는 평소 말 한마디 섞은 적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교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너 축구 잘해?"
나는 그와 접점도 없고 그의 말투와 표정이 긍정적이지 않아 보여 "적당히 할 줄 안다"라 대답했다.
그 역시 축구를 눈에 띄게 잘하진 않아 보였기에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비웃듯이 "네가 축구 잘한다고?"라며 자존심을 나는 그와의 대화 자체가 피로했고,
더 이상 대응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기 싫다’는 내 표정만 남겼다.
처음 축구부를 하게 된 당일날.
안면도 없던 처음 본 몇몇 선배들과 애들이 물어본다. "네가 축구 잘한다 했다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문장이 그의 입을 통해 ‘소문’으로 번져 있었다.
학교 기숙사에 살던 그였기에 전파도 빨랐나 보다.
그는 어느새 ‘내가 허세를 부린 사람’으로 나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중간중간 나를 보고 비웃으며 "너랑 팀 하기 싫다" "너 잘한다고 했다며?"라며 툭툭 던지며 도발하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시하는 것 밖에 없었다. 툭툭 내뱉는 말들은 작은 돌처럼 내 감정에 부딪혔다. 나는 그를 무시했지만 그 말들은 내 안에 남았다.
그 소문은 어느덧 반에도 퍼져 몇몇 애들도 "네가 정말 그 말을 했어?"라며 물어봤다.
나는 점점 축구할 때마다 위축됐고 연습도 해봤지만 실력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몇 개월 후 전학을 갔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뿌린 말과 내 안에 남긴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내가 좋아한다는 건 잘해야만 가능한 걸까?
내가 좋아한다는 감정은 타인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걸까?
나는 그 시절, 이렇게 배웠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감정은 "내가 증명해야 할 무엇이 되어버리는 걸까?"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내가 무엇을 잘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자기 잘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고...
나는 그날 겸손의 의미로서 배웠다고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뭐라 하든 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