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기록에서 자유로워졌을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날, 생활기록부가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몇 장 되지 않는 얇은 종이 안에 3년의 시간이 요약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었다. 나는... 읽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스스로 ‘문제없는 학생’이라 생각했던 내게 생활기록부는 “○○는 조용하고 성실하지만 교우관계가 좋지 않고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문장으로 대답했다.
1학년 담임은 내게 호의적인 평가를 남겼지만 2, 3학년 담임들은 내 단점을 정확히 분리해 기록해 두었다.
그들이 나를 위해 솔직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들이 원하는 학생상이 아니었던 걸까?
종종 생활기록부는 평생 따라간다는 말들을 하던 그들의 어조는 단호했기에 그 기록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학생’이 아니라 ‘판단받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 질문은 결국 입 속에서 삼켜졌고 나는 늘 그랬듯 말없이 지나쳤다...
생기부를 보자마자 몇몇 과거의 사건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고등 2학년 때 외향적이고 단합, 단체생활을 강조했던 담임선생님은 어느 날 방과 후 반 학생들을 불러 모아 다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자며 요리 공간을 빌려 데려갔다. 내가 싫어하던 이들과 학교 끝나고도 강제로 봐야 하고 참여 거부권이 없었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 몇몇 이들은 자기들이 대장인 양 지시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칭찬받는다. 나는 전혀 재미도 의미도 느끼지 못했고 다른 학생들과 어색하고 피하려는 모습이 너무 눈에 띄었나 보다.. 그는 다들 보는 데서 큰소리로 "○○야 혼자만 있지 말고 애들이랑 어울려 봐라!" 라며 호통 쳤지만 나는 여전히 시늉만 할 뿐 진정으로 내키지 않았었다. 그때 최대한 어울리려고 혼신의 연기를 했어야 했던 걸까? 어쩌면 그때의 일이 그에게 큰 이미지로 각인이 됐나 모르겠다.
그리고, 고등 3학년 졸업 전 하루 소풍을 갔던 날. 수능 시험을 망치고 재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소풍 가는 대신 학교에 남아 자습을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였다. 수능 망하고 우울하고 어색하고 친하지 않은 이들과 같이 또 어울리는 척을 해야 하는 게 싫어서였다. 너무 파격적이었던 걸까? 선생님은 목소리를 높이고 단체생활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라며 설득하였다. 어쩌면 단체생활이라는 것을 내가 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는 종종 모두가 모인 곳에서 내가 무척 성실하고 맡은 일들을 잘 해낸다 칭찬하였지만 생활기록부는 냉소적이었다. 내 선택은 그날 이후 그에게 '이상한 아이'로 분류된 듯했다.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그들이 원하는 학생상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었나 모르겠다.
나는 그에 대한 죗값을 받은 것일까?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잘못된 걸까?" "왜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을까?”
그 질문은 오랜 시간 내 안에서 곪았다.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록된 내 이름 옆의 문장들은 결코 내 전부가 아니었다.
그 몇 줄의 문장이 내 평생을 규정할 자격이 있는가? 그들의 기록은 사실이었을지 몰라도 진실은 아니었다.
종종 그 시절의 일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선생님보다 그때의 나를 지금도 미워했던 나 자신이 더 아프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은 그 아이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