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시작할 때 나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축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시작만 하면 무조건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늦게 시작하는 건 같은 상황일테니 나름 운동 신경이 있는 내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 달리기도 잘했고, 첫째랑 공놀이 할 때도 아이의 공을 잘 뺏지 않았던가. 기본기 훈련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체력이 좀 떨어지는 듯하고 동작을 금방 따라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에도 쉽게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슈팅이 남아 있었으니까. 난 슈팅에 강할 테니까!
오늘 드디어 첫 슈팅 연습을 시작했다. 드디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새롭게 시작하는 동작을 배울 때의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설렘으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코치님이 디딤발을 정확하게 딛고 발등으로 공을 차보라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며 뻥~!
어떻게 된 일일까? 공이 발등에 맞지를 않았다. 이상하다. 코치님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외치고, 공을 집중해서 차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발끝에 맞고 쪼르르 공이 흘러갔다. 어라, 이게 아닌데!
리프팅이 잘 안 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같이 시작했음에도 독보적인 습득 속도를 보이고 있는 20대의 에이스 영지 씨는 리프팅의 귀재였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공을 가지고 놀았던 사람인 것마냥 자유자재로 공을 갖고 놀았다. 코치님이나 영지 씨가 리프팅하는 걸 보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내가 해보면 공을 발등에 한 번 맞히기가 어려웠다. 100번을 튕기면 1번 정도 발등에 맞힐 뿐이었다. 그마저도 위로 공이 튀어 오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여기저기 튀어 나가는 공을 잡으로 뛰어 다니다 보면 금세 지쳐 버렸다.
리프팅 연습은 정말 하기 싫었다. 제대로 공이 맞질 않으니 재미가 없었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손흥민은 초등학교 시절에 하루 3~4시간을 했다는 걸까. 축구를 배우며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프로 축구 선수들의 엄청난 노력들이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내가 하나씩 느껴보며 더 존경하게 된다. 축구는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반복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한다.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기본기가 충실한 사람은 흔치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렇게 지루한 과정을 견디고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이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축구를 배운지 한 달이 넘어도 나의 리프팅 개수는 늘지 않았다. 여전히 100개 중 1개만 제대로 맞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슈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내 상상 속에서는 임팩트 있게 공을 빵~ 차서 그 볼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현실 속의 내 모습은 삑사리로 공을 차서 아차차차차 아쉬워하고 동료에게 미안해하는 모습만 연출되고 있었다.
첫 슈팅 이후로 나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다. 제대로 슈팅을 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오늘도 나는 리프팅이 하기 싫어 꾀를 부리고 있으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