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미워한다.
나이가 들어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마음의 폭만큼 그녀를 점점 미워하게 되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정리하다보면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평생 동안 내가 탐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녀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면 안 된다.
오늘 그녀가 내게 한 말은
ㅡ머리 묶어라(나의 긴머리가 세상의 종말을 가져온다고 믿는 걸까)
ㅡ밥 더 먹어라(이미 고봉 한 그릇을 다 먹었는데)
ㅡ애를 잘봐라(계속 잘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녀는 내게 의미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무의미한 말들만 반복한다.
그녀의 집에 내가 들어서면 그녀는 나를 스캔한다.
ㅡ머리가 묶어져 있는가?
ㅡ헐렁한 옷인가?
ㅡ화장이 진하지는 않은가?
이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수정할 때까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내가 그녀에게서 쏟아지는 말들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최대 시간은 하루다. 그 시간이 지나면 미간 주름이 점점 깊어진다. 끝까지 예의 있게 대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무너져간다.
더 버릇 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어서 떠나야 한다. 엄마에게서.
그녀는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내게 해야 할 말들이 너무 많아서 상대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다. 그녀는 티비를 보다가 살짝 잠이 들어도 끊임 없이 말을 한다. 티비에 나오는 드라마 얘기 같기도 하고 나를 비롯한 가족들 얘기같기도 한 말들이 뜨거운 용암처럼 흘러 나온다.
그녀가 자주 반복하는 문장구조를 생각해 보았다.
ㅡ엄마가 물 떠줄게.
ㅡ밥 더 먹어. 밥 더 떠 놓을게.
ㅡ밥 많이 먹어. 엄마가 많이 해놨어.
ㅡ할머니가 고기 발라줄게. 많이 먹어.
그녀는 '-해 주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항상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집정리를 하고 있으며 집안에서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갑자기 쉴 틈도 없이 부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가 안쓰러워진다.
ㅡ내가 할게요, 두세요.
ㅡ애들이 고기는 잘 안 먹어요. 내가 애들 반찬은 만들게.
ㅡ힘들텐데 앉아서 좀 쉬세요.
내가 부엌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하자 그녀가 드디어 거실에 앉아 아이들에게 말을 붙인다.
ㅡ우리 애기들, 할머니한테 와봐.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울먹이기 시작한다.
ㅡ애들이 엄마 찾는다, 애나 봐라.
ㅡ애들이 누굴 닮아 왜 이렇게 극성이냐.
그녀는 다시 부엌에 있다. 부엌일이 끝나면 그녀는 거실에서 이부자리도 제대로 펴지 않고 저녁잠이 든다. 일일드라마를 켜놓고 잠이 든다. 옆으로 누워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있는 그녀가 유독 작아 보인다. 고단한 그녀의 하루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다.
그리고 점차 외로워진다.
내가 외로워서 점차 그녀가 미워진다.
그리고 그녀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