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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Feb 15. 2023

글쓰는 찰나 ㅡ 첫 여행의 기억

어린 시절에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주말에도 늘 일을 하셨고 주말마다 나는 집에서 티비와 있었다.


드라마를 좋아했던 나는 아침드라마부터 심야드라마까지 모든 드라마의 재방송 스케줄을 꾀고 있었다. 주말 내내 채널을 왔다갔다하며 모든 드라마를 섭렵했다. 그렇게 열심히 보는 드라마 속에는 가족, 연인, 친구들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외딴 섬에 남아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연인,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할 때 나오는 가족 여행씬, 친구들 바닷가에 놀러가서 신나게 바다놀이를 하고 지는 해를 배경으로 우정을 약속하는 씬 등. 그들의 여행은 그렇게 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드라마가 현실을 기반으로 창작해낸 이야기임을 알게  이후 내 추억의 빈곤함이 부끄러워졌다. 늘 똑같은 하루하루들을 추억이라고 부를 수는 없 것 같았다. 행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


수능이 끝 19살의 겨울, 나는 부모님을 조르기 시했다.


우리도 어디 좀 놀러 가, 제발!


부모님은 차마 거절은 못하시고 내내 대답을 피만 하셨지만(수능을 막 마친 나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줘야 한다는 이상한 분위기가 있었다.) 내가 지치지 않고 졸라대자 결국 고집을 꺾으셨다. 주말 중 하루 시간을 내주시기로 한 것이다. 대신 부모님은 바쁘니 모든 준비는 내가 하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곳은 정말 많았지만 집 근처 유원지를 가기로 결정했다. 멀리 가지 않을 것이 뻔한 부모님이 마음을 바꾸시면 안 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첫 여행을 가게 되었다.


유원지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날이 너무 화창해서 소풍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두근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치악산 자락에 숨은듯이 자리잡고 있던 그 유원지는 황량하고 쓸쓸했다.


동물원의 우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오리나 토끼, 염소들은 늘 보던 동물이라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놀이공원도 사람들이 없어 운행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리하지 않고 방치된 놀이기구들을 볼 때마다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ㅡ여길 왜 오자고 했어? 볼 것도 없구만.

부모님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나는 아버지의 이 한 마디에 모든 힘이 쏙 빠지고 말았다. 


그냥 집에서 쉬는 게 나을 뻔 했다. 드라마 보면서 가상 여행이나 하는 것이 좋을 뻔 했다.

ㅡ그럼 그냥 가자, 집에.


유원지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우리는 유원지를 나왔다. 여기까지 오기는 참 힘들었는데 돌아가는 것은 너무 쉬웠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마음 속에서 이상한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

ㅡ엄마아빠, 잠깐만 기다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작은 매장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회용 카메라를 샀다.

ㅡ가기 전에 사진 한 장만 찍고 가자!


유원지 간판을 배경으로 우리 가족은 어색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잔뜩 찡그린 표정의 부모님과 입만 웃고 있는 나의 모습. 이 사진은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것일까. 친정집 오래된 앨범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울컥하곤 한다.


그 이후로 나는 많은 여행을 했다.

마치 나의 기억 덧칠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럴 때마다 첫 가족 여행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부모님은 여전히 여행을 가지 않으신다.

부모님에게는 나와의 그 여행 아니 외출이 행의 전부일 것이다.


나의 기억과 부모님의 기억 중 어느 편이 더 생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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