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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Jan 27. 2023

글쓰는 찰나 - 나는 왜 창문을 여는가?

 나는 고질적인 알러지성 비염을 제외하고는 잔병치레도 별로 없는 건강 체질의 튼튼한 편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 신경도 있는 편이어서 꾸준히 다양한 종목의 운동도 하고 있다. 건강에 꽤 자신 있는 편인 내가 처음으로 ‘그것’을 경험한 것은 지금도 매우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다. 산전휴직을 하고 비교적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타자마자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갑자기 식은 땀이 흐르고,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심한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답답해지다가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내 눈 앞에 작은 원만 남겨두고 온통 새까맣게 세상이 변했을 때, 내가 지금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두려움이 확 끼쳤다. 살려달라고 외쳤는지 기사님!이라고 외쳤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버스 기사님은 버스를 멈춰 주었고 나는 쓰러지듯이 버스에서 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데 눈앞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렇게 몇 분 호흡을 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금 전까지 있던 증상들이 사라졌다.


 처음 겪는 이 일에 며칠간은 또 그 증상이 나타날까봐 걱정했지만 별다른 이상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어느새 그 일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그 증상이 나타난 것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들을 때였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 답답함이 살짝 느껴지더니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배가 아프기 시작하자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본능적으로 창문을 찾았다. 작은 창문이 보였고 나는 그 창문으로 뛰어가 필사적으로 그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자 숨이 제대로 쉬어지기 시작했고 싸르르하던 배도 아프지 않았다. 그 이후로 사람이 많은 공연장에서, 백화점에서, 롯데월드에서 그런 증상들을 경험했다.

 

가끔 밀폐된 실내 공간에 들어설 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면 혹시나 그 증상이 나타날까봐 바로 나가버린다. 이제 내게 ‘그것’은 전조 증상이 너무나 확실해서 그것만 조심하면 피해갈 수 있는 약간의 불편함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 증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빈도가 낮아졌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갑자기 그 증상이 나타났다.


 1차 지필평가를 감독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아이들은 히터를 풀가동했고, 교실은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감독을 하러 교실에 들어섰을 때 순간 답답함을 느꼈지만 히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는데, 조금씩 배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 그것이 찾아왔구나 알 수 있었다.


바로 앞문을 열고 복도 쪽 차가운 공기를 쐬니 조금씩 증상이 나아졌다. 그러나 교실로 들어서면 다시 증상이 나타나서  앞문을 살짝 열고 문 쪽에서 감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직장 생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한 순간이었다. 나는 참담함을 느꼈고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수능 감독에 대한 공문이 내려온 시점이어서, 교감 선생님께 찾아가 내 증상을 말씀드렸다. 수능 시험 감독을 최대한 부감독이나 복도 감독으로 배정해 주시겠다는 교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오면서 내게 왜 이런 증상이 생겼나 원망과 죄책감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에 시달렸다.


 내가 겪은 증상을 검색해 보면 ‘미주신경성 실신’이나 ‘공황 장애’와 매우 비슷하다. 치료법은 딱히 없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면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약물 치료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답답함에 매우 예민해지면서 창문이 크고 들판이 보이는 도시 외곽의 집으로 이사를 했고, 창문이 없거나 작은 공간은 피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틈만 나면 학교 건물을 나가고 싶다. 웬만하면 창문을 열고 창문 쪽 자리에 앉게 된다. 교직원 식당에서 나도 모르게 열려 있는 창문 쪽 자리를 찾아 앉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방이 답답해서 거실에서 주무시는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처럼 나도 이제 방에서 잠도 못 자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도 혹시 나와 같은 증상을 겪으셨던 걸까? 내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첫 아이 임신은 내게 분명 기적이었다. 사표를 쓰고 싶을 정도로 학교 일에 시달리고 있을 때 찾아온 아이 덕분에 나는 휴직을 할 수 있었다. 휴직을 하고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실컷 했다. 아침에는 평생교육원에 가서 문예창작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왜 나의 자율신경계는 어그러졌던 걸까? 이전의 상처를 묻어둔 결과일까? 아니면 임신으로 인해 달라진 내 몸에 내가 미처 적응하지 못한 걸까?


인은 알 수 없지만 내 몸은 ‘그것’을 경험한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닫혀진 창문을 여는 것 정도로만 흔적이 남기를 바랄 뿐이다. 나도 모르게 남은 자율신경계의 상처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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