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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Jan 26. 2023

거침없이, 축구 - 눈이 내리는 밤에 축구를

오늘은 출석한 사람이 나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간걸까? 


결국 코치님과 예상치 못한 일대일 훈련이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 연습량이 적다고 불만이었는데 막상 일대일로 하려니 부담감이 밀려왔다. 

코치님이 나 때문에 오늘 연습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소심한 나는 일대일 훈련이 부담스러워 평소보다 더 실수 연발이다.

 

오늘은 드리블 종합 연습이다. 지난번 연습한 헛다리 드리블을 반복한 후 다양한 동작을 섞어서 연습했다. 한 번 헛다리 후 공을 뒤로 굴려 옆으로 보내 (수비수를 따돌리고) 다시 슬쩍 다른 발로 공을 옮기는 팬텀을 하는 동작이었다.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부담감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몸도 가벼워졌다.

어라, 이번에는 조금 되는 것 같다! 지난번보다 헛다리도 조금 빠르게 돌아가고 발을 옮기며 공을 차는데 자신감이 붙어서 자연스럽게 동작들이 이어졌다.


- 저, 잘하죠, 코치님? 

어라, 코치님이 어디 가셨지..


-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 때 우리팀 피지컬 최강자 유림씨가 오셨다. 

코치님도 바람같이 어디선가 나타나셨다.


유림씨가 오니 드리블만 계속 시킬 것 같았던 코치님이 갑자기 슈팅 연습을 하자고 하신다.

그것도, 칩슛을!


코치님은 마치 손흥민의 아버지처럼 슈팅 연습은 최대한 늦게 가르쳐주고 싶어하신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전적으로 맞는 말씀!) 

우리가 늦게 시작했고 취미로 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결국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과 기본적인 축구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 때마다 선수들이 하는 몸풀기를 조금씩 따라하고 드리블과 패스를 매일 연습한다. 슈팅 연습은 지난번 연습 경기를 하기 전, 전술을 알려주기 위한 시간에 한 것이 다였다. 그때 나는 발등에 공이 맞지 않는 충격을 경험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본 슈팅 연습도 아닌 칩슛이라니 무슨 일일까.


코치님이 디딤발의 위치를 잡아 주시며 공을 띄울 수 있도록 알려 주었다. 공의 맨 밑에 발을 넣어야 되는 간단한 동작이었다. 유림씨와 내가 번갈아 가며 공을 차 보았는데, 유림씨의 모습을 보니 오늘 이 연습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코치님은 유림씨를 우리팀의 칩슛 가능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유림씨는 한번 두번 슈팅이 반복될 때마다 공을 점점 높이 띄우더니 결국 코치님의 키를 넘겨 골대로 공을 골인시켰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는... 

공 맨 밑으로 발을 집어 넣으려는 순간, 땅에 내 발이 박힐 것 같은 공포심에 발을 공바닥으로 넣지를 못했다. 10번 20번 계속해서 발끝으로 공을 차버리는 내 자신이 그렇게 바보같을 수가 없었다. 

한번 발가락 다친다고 생각하고 차보자! 

아무리 다짐해도 결국에는 발을 살짝 띄워 차는 것이 아닌가. 

나를 이렇게 겁이 많게 한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고(갑자기 엄마는 왜 소환 당한거지) 그 짧은 순간에 다치지 않겠다고 발을 띄우는 나의 순발력에 놀라기도 했다.


결국 나는 한 번도 공을 띄우지 못한 채 첫 칩슛 연습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패스 연습 합시다.


단 둘뿐이어도 에이스와 열등생으로 나뉘는 이 거짓말 같은 현실이 씁쓸했다.

뭐, 나도 잘 하는 게 하나는 있겠지.


코치님까지 포함해서 삼각형 모양으로 서서 서로 패스를 주고 받았다.

인사이드 패스는 디딤발을 잘 딛고 패스를 주고 싶은 상대를 바라보며 차면 된다.

이번에는 미리 이름을 부르지 않고 노룩패스까지 포함해서 예상치 못한 패스를 주기로 했다. 어떤 공이 와도 받을 수 있는지 연습해 보자고 하셨다.

이번에는 셋이 연습이 되는 것 같다. 제법 순발력 있게 공을 잘 받아냈다.


칩슛으로 쪼그라들었던 내 마음이 조금씩 펴지는 것 같다.


야외에서 훈련하는 이 시간 동안 나는 하늘을 자주 쳐다본다.

잠시 숨을 돌릴 때 하늘을 바라보면, 달이 조금씩 위치를 바꾸는 것이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동안 일주일 치 분량의 밤하늘과 달을 바라본다.


그런데 오늘은 달이 안 보인다.


눈이 온다.

눈이 내린다!!


너무 너무나 예쁘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솜같이 가볍게 내리는 하얀 눈.

나폴나폴 내리는 눈과 함께 패스 연습을 하는 이 시간이 갑자기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 눈 올 때 하늘을 바라보면 소녀라던데, 제이는 소녀네 아직.

- 이제 공 보자!


알 수 없는 힘이 충전되어 다시 처음처럼 연습을 시작했다.


이렇게 눈 내리는 날, 나는 축구를 한다.

잘하든 잘하지 못하든 그건 상관이 없었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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