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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Mar 14. 2023

글쓰는 찰나 ㅡ 오, 나의 라이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를 기억한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감정을 등에 업고 둘의 경쟁은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김연아의 시크한 연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며 아사다의 귀여움은 역시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감탄하곤 했다. 김연아의 뛰어남을 아사다 마오가 더 돋보이게 해주는 듯했다. 스포츠 분야에서 라이벌은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자극제가 되어  더 좋은 기록을 낳게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서로 응원하지만 결전의 순간에는 서로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존재. '라이벌'은 그 둘의 모습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지나치게 평범한 나에게도 '라이벌'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친구가 있다.


 친구와 나는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15년 동안이나 같은 등하굣길을 걷는다는 건 단짝이 될 기회를 15년 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린 단짝이 되지 않았다.


우리의 공통점은 별로 없었다. 굳이 찾아보면 단 하나, 절대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 았다.

학교 등굣길을 함께 걸어가다가 누군가의 발걸음이 빨라지면, 서로 지기 싫던 우리는 점점 더 빨리 걷 시작다. 국에는 우리 둘다 학교까지 달려가 되는 이 많았다. 관심이 없던 일이어도 그 친구가 한다고 하면 당연히 나도 해야 했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차이점은 매우 많았다.  친구가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섬세한 아이였다면 나는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고 뛰어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었다. 우리집에 놀러 와서도 나놀지 않고 내 책장에 달라붙어 본인집에 없는 책들을 읽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도서부의 중심 회원이었다. 나는 책보다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이 훨씬 좋았고, 집에 있을 때면 티비 드라마를 보느라 바빴다. 놀 친구들이 없고 티비에 볼 만한 것이 없을 때에야 난 책을 읽었다. 도서부에 들어가는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느 날 같이 집으로 가다가 과자를 나눠 먹은 적이 있었다. 몇 차례 과자를 먹다가 그 아이가, “나는 조금만 먹으면 질려서 과자 못 먹겠더라. 군것질 많이 하는 애들 이해가 안돼.” 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부끄럽게도 친구들과 비교적 사교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내가, 책을 읽느라 친구들과 거리를 두는 그 아이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친구들과 깔깔깔 웃으며 학교 복도를 뛰어 다닐 때,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에 집중하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진짜 세상에 먼저 다가가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아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경주에서는 내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질 수밖에 없겠다는 불안이 훅 스치곤 했다. 어떤 경주를 하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분야는 성적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시험을 자주 봤던 시절이라, 우리 둘의 테스트는 끊임 없이 이어졌.

나는 평소에는 예습이나 복습을 하지 않다가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했다. 완벽히 교과 내용을 암기할 때까지 일주일을 밤을 샌 적도 있었다. 그 아이는 평소에도 시험 기간처럼 공부를 했다. 어떻게 매일 매일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기숙사에 함께 있었다. 기숙사의 자습실에서 매일 공부하는 학생은 그 아이가 유일했다. 나는 같은 방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으면서도 ‘지금 그 아이는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있겠지.’ 생각하며 시계를 쳐다보곤 했다. 결국 내가 기숙사를 나와 고시원에 들어갔던 것도 그 친구에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 아이도 나중에는 고시원에 들어와서 우리는 또다시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학교 내신 성적은 이상하게도 내가 더 좋았지만 결국 수능은 서로 비슷비슷했던 생각이 난다.


그 친구는 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나는 사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국어 교사가 되었다. 나는 그 친구와 매우 다른 인생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된 우리는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행적을 무의식적으로 좇아가는 건 아닌가 스스로 의심이 들었던 순간도 있다. 교사 연극 모임에 가입해 연극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그 아이가 교사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나의 강박관념이 사실은 그 아이를 오랫동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 아이와 등하굣길을 함께 걷지 않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그 아이의 영역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의 성장기에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그 아이를 '라이벌'이라고 부르려니 옹졸한 나의 마음을 포장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내가 더 솔직했다면, 내가 진심으로 그 아이를 응원해 주었다면 우리도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진짜 '라이벌'이긴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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